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 사는 비극[동아광장/최재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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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접경 강에서 숨진 이민 父女 비극… 정치불안 엘살바도르, 목숨 걸고 탈출
트럼프-민주당, 서로 “네 탓”
외국인 입국 막아도 난민은 예외… 중국 내 탈북자 20만 명, 참혹한 생활
우리는 北이탈주민 특별 보호해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지난달 24일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리오그란데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젊은 아버지와 어린 딸의 참혹한 사진이 전 세계를 울렸다. 엘살바도르 출신의 오스카르 라미레스(25)와 딸 발레리아(2)는 조국을 탈출해서 멕시코에 머무르다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강을 건너던 중 급류에 휩쓸렸다. 죽은 발레리아는 아빠의 셔츠 안에서 업힌 채 아빠의 목을 팔로 감고 있었다. 죽으면서도 아빠를 놓지 않았다. 엘살바도르에 남았던 라미레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을 때까지 손녀를 놓지 않고 지키려 했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참 슬픈 이야기다. 이들은 왜 조국을 떠나 낯선 미국에 가려고 목숨까지 걸었을까.

엘살바도르는 인구 600만 명의 작은 나라로 30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1821년 독립했고 1841년 공화국이 수립됐다. 비옥한 화산성 토양에서 독자적 기술로 재배한 독특한 풍미의 커피로 ‘커피 공화국’이라 불리며 중남미 커피 산업을 주도했다. 1960년부터 공업화에 착수해 중미 최대의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좌우 이념 대립과 빈번한 쿠데타가 12년에 걸친 내전으로 이어졌다. 7만여 명이 죽고 100만 명이 탈출했다. 국가 경제가 붕괴되고 국토는 쑥대밭이 되었다.

1992년 유엔의 중재로 내전이 끝났지만 계속된 정치적 불안정으로 조직범죄 집단이 발호했다. 전체 인구의 1%가 넘는 갱단이 중무장해서 살인, 납치 등 범죄를 일삼았다. 2015년 살인율이 인구 10만 명당 108명으로 압도적 세계 1위였다. 2위 온두라스 63명, 3위 베네수엘라가 57명이고 우리나라는 0.74명(195위), 일본 0.31명(212위)이니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 수 있다. 엘살바도르(EL SALVADOR)는 스페인어로 ‘구세주’다. 세상을 구원하는 존재, 즉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이런 이름의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미국의 반응은 복잡하다. 민주당은 망명을 어렵게 만드는 비인간적 이민 정책이 비극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들이 아예 미국에 올 마음을 먹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민주당의 비협조로 부녀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며 민주당을 비난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은 다른 문제다. 국가는 국익과 국민 보호를 위해 외국인의 입국을 심사·규제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이 입국하려면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 경제·사회 질서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는 외국인의 입국은 금지된다.

어떤 국가든 외국인의 입국을 막을 수 있지만 인도주의에 입각한 예외가 있다. ‘난민’이다. 난민법은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외국인을 난민으로 보호한다. 우리에게는 ‘난민’ 외에도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가슴 아픈 존재가 있다. 소위 탈북자, 법률 용어로는 ‘북한이탈주민’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북한이탈주민을 특별히 보호할 의무가 있다. 북한 지역이 대한민국 영토이고, 이들도 국민이라는 헌법 정신상 당연한 귀결이다.

심각한 경제 파탄과 식량난, 가혹한 인권 상황 때문에 탈북자는 계속 늘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재 중국 내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는 5만∼2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태국, 라오스 등을 거치는 탈북 루트 중 가장 위험한 곳은 중국이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중국의 감시 시스템이 치밀해지면서 탈북자가 국경까지 이동하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어졌다. 이들이 중국 공안에 검거돼 북한 측에 인계되면 이후의 참상은 목불인견이고, 특히 여성들이 겪는 인권 유린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라 한다.

엘살바도르나 북한에 태어난 것이 죄는 아니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의미가 없다. 외국으로의 탈출을 생각할 필요 없는 나라에 태어난 행복을 감사하면서, 우리 정부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탈북자 보호 의무를 좀 더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기대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엘살바도르#난민#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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