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북-미 회담을 보는 ‘희망’과 ‘전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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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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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내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희망’은 모두가 한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 ‘전망’은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한미 관계의 공고함’에 대한 우려가 많다. 우리 사회 모든 문제가 그렇듯 한미 간 이견의 존재 자체에 대해 진보와 보수가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진영의 ‘발목잡기’로, 보수진영에서는 우리 정부의 성급한 제재 완화 논의가 초래한 위기 상황으로 본다.

양국 관계자 누구도 한미 간 이견의 존재를 인정할 리 만무하다. 상대방에 대한 외교적 결례가 될 뿐 아니라 외교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국 언론의 한미 관계에 대한 논조 분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추론해 보았다.

1990년부터 2018년 2월까지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 USA투데이 등 미국의 대표 일간지에서 ‘South Korea(남한)’와 ‘North Korea(북한)’가 제목에 들어간 기사 전수(남한 5223건, 북한 7199건)를 분석했다.

그리고 이 중 ‘한미 관계’와 ‘북-미 관계’에 관한 기사를 추렸다. 기계학습 방식으로 각 기사의 한미 관계 및 북-미 관계에 대한 논조를 추정한 후 긍정(+1), 중립(0), 부정(―1)으로 분류된 기사의 논조를 연도별로 합산하여 연간 논조를 계산했다.

우선 제3차 북핵위기가 고조된 2017년 이후 1차(1993년 ―32, 1994년 ―98), 2차(2002년 ―94, 2003년 ―93) 북핵위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북-미 관계에 대해 부정적 논조(―428)의 기사가 많았다. 이번엔 확실히 위기감의 차원이 다르다.

한미 간 이견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과거 북핵위기 당시 한미 관계에 대한 논조는 어땠을까? 1차 북핵위기가 불거진 1990년대 초에는 한미 관계에 대한 논조에 특별한 변화가 없어 미국 언론의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2차 북핵위기 때는 미국 언론의 한미 관계에 대한 시각에 변화가 감지된다. 당시 북-미 관계뿐 아니라 한미 관계에 대한 논조도 상당히 부정적(2001년 ―15, 2002년 ―18)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국내 상황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외교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의 ‘동맹파’-‘자주파’ 갈등으로 윤영관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문제는 최근 미국 언론의 논조에서도 2차 북핵위기 당시 못지않은 우려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2017년에는 한미 관계에 대한 논조가 ―14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2월까지 이미 ―9를 기록했다. 2018년 전 기간이 포함됐다면 2차 북핵위기 당시 우려의 수준을 넘어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미국 언론의 논조에 대한 해석 역시 진영마다 다를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심각한 적신호로 해석할 것인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미국 언론의 시각으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할 것이다. 의미가 무엇이든 현재 미국 언론이 한미 관계를 우려스럽게 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12일 미 의회를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북한 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시한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부디 내가 틀리고 당신이 맞기를 바란다”는 말로 면담을 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가진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과 전망의 괴리, 그리고 한미 간 시각차에 대한 복잡 미묘한 인식이 모두 녹아 있는 화법인 듯하다.

펠로시 하원의장처럼 필자도 미국 언론이 틀렸기를 바란다. 최근 진보 성향의 WP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 결론 내리기는 아직 이르지만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인간’으로 결론 내리기엔 전혀 이르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들의 한미 관계에 대한 시각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에 기인한 감정적 평가이기를,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정착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북미 정상회담#한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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