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동일]‘알고도 외면한’ 학교 밖 청소년의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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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일 서울대 교수·한국아동청소년상담학회 회장
김동일 서울대 교수·한국아동청소년상담학회 회장
보아, 유승호, 스티브 잡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자발적으로 학업중단을 경험한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정규학교 진학을 포기한 후 자칫 압도될 수 있는 두려움을 적극 껴안고 헌신적인 가족의 지원과 학교 안팎의 여러 멘토의 가르침을 받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과 직관으로 탐색해 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때론 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고난과 좌절을 안타까워하고 그 열정과 노력을 응원한다. 물론 만약 스티브 잡스가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지 궁금하지만 적어도 이들의 꿈과 삶에 대해 괜히 아는 체하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모르는 체 놓아두는 것(unknown unknowns)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사회·교육 안전망에서 벗어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은 정말 위기를 겪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알고 있는 것을 데이터로 확인하고(known knowns),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식하고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known unknowns)이 필요하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장기결석과 학업중단으로 인한 학교 밖 청소년은 5만1906명이며 질병, 해외출국을 제외한 부적응 사유 학업중단은 2만8502명이다. 의무화한 학업중단 숙려제도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매년 5만∼6만 명의 학업중단 청소년이 생기고 그 절반 이상이 학교를 떠난다는 것이다. 또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학령인구 687만 명 중 청소년은 37만 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여전히 실태가 확인되지 않는, ‘비자발적 학업중단’ 학교 밖 청소년이 어림잡아 2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제 ‘학교 밖 청소년 지원 법률’이 시행되었고,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가 본격 활동을 시작하면 ‘모르는 것’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학교 밖 위기 청소년과 가정이 끊임없이 보낸 명백한 긴급구조(SOS) 신호를 알고도 무시했고, 결국 그들을 보호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 발생한 부천 최모 군 살해사건이다. 인천 11세 여아 학대사건을 계기로, 장기결석자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번 사건을 찬찬히 다시 보면, 학교 밖 위기 청소년의 요구와 지원에 대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파국은 바로 오는 것이 아니라 위험요인이 누적돼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문제 행동을 먼저 거친다는 위기진행 과정은 잘 알려져 있다. 빈곤과 일관성 없는 양육 환경, 정서장애 같은 위험요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평소 학업 부진, 학교 부적응의 명확한 위기 징후를 보이게 된다. 이를 적절하게 다루지 못하면 아동학대와 장기결석의 문제 행동을 보이게 되고, 마침내 파국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학교 밖 위기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 엄격한 출결 사후 관리, 교사 개인수준이 아닌 학교와 교육청이 책임지는 아동학대 의무신고제가 확립돼야 하고, 이웃 주민과 지역사회 자원인사가 보호요인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범부처 지원 시스템을 추진할 수 있는 예산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모든 학업중단 청소년을 위한 개별화된 학교 밖 전환 계획을 함께 세우고,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목적에 적합한 최소한의 학생 정보를 한시라도 공유하면 ‘아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나무물통이 아무리 커도 한 귀퉁이가 낮으면 그 이상으로 물을 담을 수 없다. 리비히의 최소 법칙에 따르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모른 체하는 만큼 우리 공동체와 국가의 역량도 낮은 수준이 된다. 선진 한국을 논하기에 앞서, 알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학교 밖 위기청소년의 실태와 지원을 다시 정비하고 이를 다룰 수 있는 공동체의 집단 지혜를 기대한다.

김동일 서울대 교수·한국아동청소년상담학회 회장
#청소년#학교#위기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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