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진태]테러방지법에 무엇을 담아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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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소장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소장
현대 인류가 직면한 공포 중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적, 테러에 대한 공포이다. 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한 프랑스 파리 테러는 이를 입증하는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은 상대적으로 테러의 안전지대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테러조직에 가담하고 외국인이 국내에서 디지털 지하드를 전개하고 테러조직이 한국을 십자군 동맹국으로 규정하고 협박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테러는 더이상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따라 테러 대응의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은 시급한 문제이며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법적 근거 마련이다. 9·11테러 이후 유엔의 대테러법 제정 촉구와 대테러 활동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테러방지법 제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테러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민간단체의 반대, 대테러센터 설치를 둘러싼 국가정보원의 권한 강화 논란, 유관 부처의 이기주의, 여야 정치권의 정쟁, 통신 도·감청에 따른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파리 테러 이후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테러방지법에 적용할 테러의 개념 문제는 유엔이 채택한 개념을 따르거나 테러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 등을 통해 우리 실정에 적합한 중립적 개념을 채택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테러방지법에 담아야 할 기구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대테러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테러대책위원회, 테러 유형에 따른 책임 부서의 장이 본부장을 맡는 테러사건대책본부, 그리고 대테러 활동 전반에 관한 통합 지원 및 조정을 하는 대테러센터이다. 대테러센터는 테러대책위원회(대통령) 직속으로 하고 대테러센터의 장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면 국정원의 권한 강화 논란은 사라질 것이다.

테러 유형에 따라 테러사건대책본부 지휘 아래 테러대응 책임을 맡게 되는 구조지만 유관 부서의 통합적 지원과 참여 없이는 효과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대테러센터이다. 대테러센터는 개별 부처가 대테러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지원, 보좌, 조정해주고 대응 조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파, 공유해 대테러 활동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테러센터는 행정자치부, 국방부, 외교부, 경찰청, 국정원 등 모든 유관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외부에서 충원한 대테러 전문가들로 구성한다. 이때 국정원은 대테러센터에 참여하는 하나의 기관이다. 대테러센터를 통해 고유 임무인 대테러 정보 지원만을 하는 것이다.

테러 혐의자 체포에 필요한 도·감청 문제는 검찰의 지휘 혹은 국회의 통제를 받아 대테러센터에서 행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테러 위협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공격 목표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통해 취약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테러를 예방, 저지, 차단하는 데 활용하는 일련의 테러정보는 대테러 활동의 핵심적 요소이다.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하는 테러범들의 추적과 테러 정보 수집에 필요한 도·감청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테러 대응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테러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라는 한 저널리스트의 지적은 테러의 심각성과 대응의 어려움을 표현한 말이다. 테러시대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대테러 역량을 높이는 일이다. 테러방지법은 우리의 안전에 관한 문제로 협상, 타협, 정쟁, 그리고 반대를 위한 반대의 대상이 아니다.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테러 활동의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또다시 실패한다면 테러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소장
#테러방지법#테러#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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