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경학]‘장애인 재활’ 정부-사회가 나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장애인의 날’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오래전 한 행사에서 만난 중증 장애인이다. 행사가 끝날 무렵 전동휠체어에 누워 있던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가 아파요. 음식이 먹고 싶어요!” 나는 생각 없이 “그럼 빨리 치과에 가서 치료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대답이었다. 그는 심하게 흔들리는 몸을 추스르며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갔다. “여러 번 치과에 갔지만 거절당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치아가 모두 망가져 음식을 먹을 수 없어요.”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치과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건물 2, 3층에 위치해 전동휠체어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어렵게 치과를 찾더라도 장애인은 의사소통과 치료가 쉽지 않아 환영받지 못한다. 수차례 진료를 거부당한 장애인은 결국 치료를 포기하게 되고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 ‘푸르메치과’가 2007년 최초의 민간 장애인 전용 치과로 문을 열게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다른 사람은 은총이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이지선 씨의 소개로 마라톤 행사장에서 은총이 가족을 처음 만났다. 은총이 아버지는 아들이 앉은 휠체어를 밀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사연을 물어보니 “아픈 아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은총이는 희귀 난치병을 포함해 6가지 불치병을 안고 태어났다. 의사는 1년을 못 넘길 거라고 했지만, 은총이 부모는 재활치료의 끈을 놓지 않았다.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을 거라 했던 은총이는 지금 열두 살이 되어 걷고 말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부모의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 지금도 은총이 부자는 전국을 돌며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비관적이다. 매년 출생아 40만 명 중 장애 비율도 증가한다. 2014년 등록 장애인은 273만 명. 이 중 장애 어린이 청소년은 10만 명으로 집계됐지만 장애출연율을 감안하면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장애가 아닐 수 있다는 기대와 다른 형제가 받을 불이익이 두려워 등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소득 장애 어린이 지원 심사를 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세 가정 중 하나가 이혼 가정이었다.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도 장애아로 인한 이혼은 예외 없다. 이혼은 어머니와 장애아에게 빈곤층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얼마 전 젊은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출생 과정에서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아이보다 부부가 더 중요하다. 엄마가 아이에게 너무 매달리면 관계가 어려워진다”였다. 장애아는 점점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가정은 점점 더 파괴될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장애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에 정부와 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아이의 조기진단 시스템을 갖추고 재활병원을 확충해 수개월을 기다려야 입원할 수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가 못 한다면 잘할 수 있는 민간을 지원하라.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장애인에게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정부와 시민, 기업과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장애인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교육받아서, 스스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하도록 하는 치료와 교육에 드는 비용은 평생 남이 도움을 주고 정부에서 지원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그런 사회가 선진국이고 복지사회다. 더이상 4월 20일이 장애인에게 특별한 하루가 되지 않을 그날을 기다려 본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장애인 재활#장애인의 날#푸르메치과#은총이#빈곤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