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진표]선거구 조정, 선관위에 맡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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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표 시대정신이사
홍진표 시대정신이사
국회의원들의 뇌를 스캔해 최대 관심사를 읽어낼 수 있다면, 요즘은 ‘2016년 총선 선거구 획정’이라는 거의 동일한 검사 결과가 나올 것 같다. 그만큼 최근 헌법재판소가 내린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비례 2 대 1 이하 결정은 차기 총선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중대 사안이다. 기존 3 대 1 편차에서 인구 상하한선은 대략 33만 명 대 11만 명이었는데, 2 대 1로 줄이려면 인구 하한선을 높여야 하고 그 결과 일부 지역구 통합은 불가피하다. 특히 주류 양당의 독점 지대인 영호남에서 현역 의원들 여러 명이 짐을 싸야 한다면, 생존 투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부 의원은 도농 간의 경제력 격차 및 면적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헌재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여 선진국보다 훨씬 큰 2 대 1 편차를 허용하면서도 헌법상 표의 평등 원칙을 지키고자 균형을 잘 유지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의 높은 관심이 합리적 문제 해결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겪었던 동일한 경험을 돌아보면 ‘여의도 막장 드라마’가 반복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당시 헌재가 기존의 4 대 1 편차를 3 대 1 이하로 하라는 결정을 했을 때(2001년) 국회는 지역구 상실 위기에 직면한 의원들의 막가파 식 저항에 우왕좌왕하다가 2004년 4월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선거구 획정법 개정을 했다. 결국 국회는 통합선거구를 최소화하고 지역구 의원 16명을 늘리는 편의적 선택을 했다.

이번에도 국회의 행동을 예측하는 건 무척 쉽다. 의원들은 무슨 일이든 제때 하는 경우가 드물고 다급해지면 대국민 쇼를 하다가도 슬그머니 없던 일로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문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몇 가지 일관된 행동 패턴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이미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수를 300명으로 늘리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아서인지 그 대신 비례대표 수를 줄이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양당 독과점 체제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현재 비례대표는 54명으로 전체 의원의 18% 수준이다. 적정 비중이 얼마인지 증명할 길은 없지만,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 속박되지 않는 전문가나 직능 대표자를 뽑아 국회 활동에만 전념하게 하고 여성의 50% 의무공천제를 통해 남녀 불균형을 교정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나아가 소수정당이나 신생정당이 진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일각에서 현재 비례대표 의원들의 수준을 문제 삼아 축소나 폐지론에 불을 지피려 하지만 이는 제도의 오류가 아니고 운영의 실패이다.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새로운 제도에 대한 논의도 가능하겠지만 지금 국회가 품질 좋은 선거 제도가 없어서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자영업자 네트워크’로 불릴 정도로 리더십 부재인 정당이 의원들의 상이하고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발전적 합의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미 각 당에서 활동을 시작한 차기 대선주자들은 당내에서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분위기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결론은 자명하다. 국회의원 수를 포함해 현행 선거제도를 그대로 둔 채 국회는 손을 떼고 선거구 획정 작업을 선관위에 맡겨야 한다. 이때 선관위의 안을 국회에서 의결하는 과정에서 고치지 못하도록 반드시 안전장치를 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국회가 다시 이 문제 논의를 주도하게 되면 과거와 동일한 결정 지연과 육탄전, 부당거래를 막을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도 의원들이 만사 제쳐두고 논의에 몰두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결정을 못 하는 한심한 상황이 길게 갈 것이다. 문제 해결 능력을 잃어버린 국회가 총선 직전까지 시간만 끌다가 결국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홍진표 시대정신이사
#선거구#선관위#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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