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근]속 빈 강정 우려 높은 자영업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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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자동차보험은 있는데 연애실패보험은 왜 없는지 학생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사업실패보험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위험을 계량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업세계에서 ‘기업가 정신’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영업’에도 기업가 정신은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자영업의 본질적 문제는 과다 진입에 따른 ‘과밀(過密)’이다. 자영업자의 적(敵)은 대규모 유통업자가 아닌 자영업자 자신들이다. 자영업자들의 과다 진입은 정치권의 인기 영합적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입법으로 골목상권을 지켜줄 테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신호를 무수히 보내 왔기 때문이다. 대규모 유통업체의 의무휴일 지정, 영업시간 단축, 거리 제한, 신규 출점 규제, 전통시장지구 지정 등이 그 사례다. 하지만 경쟁을 억압해 결과적으로 소비자 이익을 침해했고, 대규모 유통기업과 연계된 농민과 임시직 등 사회적 약자에게 오히려 손실을 안겨주었다.

24일 정부가 발표한 ‘자영업 종합대책’은 자영업 위기를 장년층의 고용 불안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로 보았다는 점에서 올바른 정책 인식이다. 정부는 장년층 고용 안정부터, 자영업의 창업, 성장, 퇴로 단계까지 생애주기에 걸친 포괄적인 지원 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구체적 대책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구조조정은 구두선에 그친 채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준다”는 식의 민원 해결식 판박이 사고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권리금 회수를 지원하기 위해 건물주의 손해배상책임과 함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건물주(임대인)가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과 계약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민법 체계의 원칙인 ‘사적 자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권리금에 대한 배상 혹은 보상 의무를 임대인이 지게 되면 임대인은 이를 임대료에 전가할 수도 있다. 권리금을 제3자가 수치화하고 계량화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상권관리기구’ 발상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옛 도심에 입주해 있는 소상공인과 소유주 등이 상권관리기구를 구성한 뒤 상권 개발계획을 제출하면 지자체가 검토해 상권관리구역을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특화거리’ 등으로 단장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예컨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카페골목은 상인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지 지자체가 계획해 만든 것이 아니다. 상권관리기구는 기존 상인들의 권력기구로 작용할 수 있다. 신규 참여자들에겐 유사 행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골목 완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년층 고용안정대책은 장년층의 ‘준비 없는 은퇴’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은퇴를 앞둔 장년층이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기업들의 인사제도 개편을 유도하고 경력 개발을 통해 재취업을 준비하도록 돕겠다는 것이지만, 역시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

자영업 정책은 ‘준비된 자영업자의 질서 있는 진입과 경쟁력을 잃은 자영업자의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영업 이외의 또 다른 고용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바로 ‘규제 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진정한 대안이다. 일자리 창출의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각론에서는 이해의 불일치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의료, 교육 산업이 대표적 사례다.

자영업 종합대책, 포장만 화려한 속 빈 강정일 수도 있다. 밀턴 프리드먼의 표현대로라면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화려한 약속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제의 본질에 천착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자영업#고용 불안#권리금#상권관리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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