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완석]소방관 외교 아닌 ‘요리사 외교’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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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대학장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대학장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대외정책상의 화두라면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외교의 딜레마일 것이다. 두 거인이 엮어내는 여러 형태의 세력 투쟁 속에서 한국이 준(準)제로섬적인 선택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과 베이징이 각각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미중의 구애가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줄서기를 강요하는 이 외교적 난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전에 검토해야 할 것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한국이 지닌 객관적 국력의 현주소다. 우리는 스스로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압축성장의 신화를 일구었다. 2012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5위 국가로 발돋움했고 종합 군사력면에서도 2013년 8위를 기록했다. 정리하면 한국은 19세기 후반 구한말 시대의 약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

둘째는 미중이 한국의 국가적 진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동맹관계인 미국과 전략적 관계인 중국이 모두 21세기 한국의 생존과 국가적 번영을 좌우하는 강대국이라는 점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셋째는 미중 대립의 성격이다. 세력권 확대와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양국 사이에 상호 봉쇄와 견제의 현실주의적 기제가 작동하지만, 과거 냉전기의 미소 관계처럼 단절적이고 적대적이지는 않다. 2012년 미중 교역액이 무려 536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양국의 이해관계는 밀접하게 교직돼 있다.

이로부터 외교적 처방전을 제시해본다. 먼저 한미, 한중관계의 지정학적 숙명성에 비추어 양자택일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외교적 선택지는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또 자칫 실수를 범할 경우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에 줄타기외교, 균형외교도 정책대안이 될 수 없다.

이제 한국의 국력에 걸맞은, 동시에 국제질서의 대변혁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대외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중의 지정학적 인력(引力)이 강해진다는 것은, 뒤집어 해석하면 한국이 높은 수준의 경제력, 군사력, 문화력을 갖춤에 따라 서울의 대외적 선택이 동북아 세력 판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즉 지정학적 추축(樞軸)국가가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을 에워싼 대외적 조건과 환경은 피동적 수세외교에서 능동적 적극외교로 점진적 전환을 요구한다. 전문가의 지적처럼 주요 2개국(G2) 사이에서 늘 불만 끄러 다닐 게 아니라 한국 스스로가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초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갈등과 협력의 길항작용을 연출하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때론 담대하게 양자의 이해충돌을 중재하는, 때론 양자의 새로운 협력공간을 창출하는, 그럼으로써 ‘기회의 창’을 넓혀 나가는 외교적 능동성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국가의 성격, 이데올로기적 지향점, 추구하는 가치 등이 상호 이질적인 미중의 이해를 적극 조정 통합해 한국에 유리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공간 확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를 ‘하이브리드(hybrid·두 가지 기능이나 역할이 하나로 합치는 것) 외교’로 정의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외교는 대립하는 중일, 러-일, 미-러 관계에서도 사안에 따라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국내정책의 아이콘으로 내세웠다. 이제 대외정책에서도 강대국의 이해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국익과 미래를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창조외교가 필요하다. 창조외교로서 하이브리드 외교가 박근혜 정부의 신외교 노선으로 자리매김되고 그것이 유라시아이니셔티브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구현에 기여하는 촉매가 되길 기대한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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