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숙]한국 남자들의 부끄러운 자화상, 코피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2005년 아동성착취반대협회(ECPAT) 국제회의에 참석한 필리핀 대표는 한국 유학생들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아이들이 많다며 실태 조사를 부탁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현지 여성들과 사귀다 여성이 임신하거나 자신이 유학을 마치면 연락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란다.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친 실태 조사 결과는 심각했다. 필리핀의 앙헬레스는 세계 각지 남성들이 방문하는 대규모 성매매 집결지가 있는 곳이다. 한국 남성들도 상당수 방문하는 곳이기도 한데 술에 취해 단체로 오는 한국 남자들의 모습은 혼자 조용히 성매매 대상을 찾는 외국 남자들과 비교됐다. 혼자라면 하지 않을 사람들까지 가담하기도 한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어린 여성을 찾아 달라는 한국인이 많다는 점도 심각했다. 성경험이 없는 어린 여성들에 대한 수요 때문에 가난하고 어린 필리핀 여성들이 유입됐다. 명백한 성 착취 목적의 아동 인신매매다. 이렇게 해외 성매매 관광, 성매매를 위한 아동 인신매매, 피임을 싫어하는 문화 등이 ‘코피노’로 상징되는 문제에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한국인에 의한 아동 인신매매는 필리핀뿐만 아니라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 단지 필리핀만큼 관광객 수가 많지 않아 사회문제로 불거지지 않을 뿐이다.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일본의 대응은 참고할 만하다. 1993년 변호사지원단을 구성해 이름과 전화번호밖에 없는 아버지를 찾을 수 있도록 인지 청구를 돕기 시작했으며 싱글맘인 필리핀 여성들에게 생계를 지원했다. 원하는 아이에겐 일본 국적을 주었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 기업은 이들을 우선 고용하도록 하여 매년 수백 명의 필리핀인 2세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을 통해 일본으로 가거나 현지 일본 기업에 취업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코피노가 아버지 찾기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이번 판결은 무책임한 남자들의 행동에 경종을 울리고 아동의 출생등록, 성장권, 교육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아동이 원한다면 적극 도울 수 있는 상담창구를 마련하고 절차를 간소화해 아버지 찾기, 생계지원, 교육 등을 지원하는 제도 등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코피노 아동을 방치하는 것은, 부모 등 아동에 대해 법적 책임이 있는 자의 권리와 의무를 고려해 아동 복지에 필요한 보호와 배려를 보장하는 한편 이를 위한 입법적 행정적 모든 조치를 취하고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도록 해야 한다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도 위배된다. 물론 이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해외 성매매를 근절하는 것이다. 지금도 해외 아동 대상 성매매는 국내법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처벌되는 사례는 많지 않아 실효성이 작다. 정부는 해외 성매매 범죄 수사 및 범죄자 검거를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인터넷 등에 성매매 후기를 올리거나 성매매 관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찾아 폐쇄하고 처벌해야 한다.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는 이런 정보를 발견하면 즉시 신고해 수사와 검거 및 처벌을 돕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해외 아동 및 청소년 대상 성매매가 범죄행위이고 국내법에 의해 처벌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성매매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인권침해임을 분명히 하고 집단 성매매 문화를 바꾸는 의식 개혁 캠페인을 확대해야 한다. 해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해외 성매매도 처벌됨을 문자나 기타 방법 등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단법인 탁틴내일은 아동·청소년 성(性)보호 운동을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이며 ‘탁틴’은 ‘탁 트인’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