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인규]또 다른 ‘세월호’에 갇힌 가출 청소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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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세월호 참사에 온 나라가 슬퍼하던 4일, 경남 김해에서 10대 여중생 3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그들은 ‘가출팸(가출+패밀리)’을 탈퇴해 집으로 돌아가려는 친구를 집단폭행해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세월호’가 서서히 침몰해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경고등이다.

죽은 여학생과는 달리 대부분의 가출 청소년에게는 돌아갈 가정이 없다. 가정폭력과 빈곤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혼자 지내기보다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출팸을 형성한다. 가출의 외로움을 덜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그러나 가출팸은 돈을 못 벌어오거나 탈퇴하려는 친구에게 폭력과 왕따를 가하는 ‘나쁜 패밀리’로 변질되기 쉽다.

경찰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14∼19세)이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은 미성년자라 합법적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가출팸의 생활비나 유흥비 마련을 위해 성매매 절도 폭력 등 범죄에 쉽게 빠져든다. 가출 소녀의 절반 이상이 성매매를 경험했다고 하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20만여 명의 가출 청소년이 미래의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들이 미래에 가정을 꾸린다면 그 자녀들 역시 빈곤과 가출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성이 무척 높다. 이렇듯 ‘가출 청소년의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하며 지속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세월호 참사에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고 슬퍼하는 보통 사람들이 가출 청소년 문제는 자신들과 무관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보통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친다. 지금 당장은 청소년 범죄로, 미래에는 빈곤과 성인 범죄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금 증가의 형태로 보통 사람들의 자녀들을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둘째, ‘가출 청소년의 세월호’는 아주 천천히 가라앉고 있어서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는 얘기는 여론 지지율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문제 해결에 관심을 쏟지 않으리란 걸 의미한다. ‘새 정치’를 부르짖는 정치인조차 이 문제를 외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출 청소년 문제에 관한 한 나를 포함한 국민 대부분은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이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가깝다. 내가 나서서 가출 청소년을 도와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해결 노력에 ‘무임승차(無賃乘車)’하려는 인센티브가 강하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재화를 ‘공공재(public goods)’라 부른다.

가출 청소년 문제와 같은 공공재는 정부가 세금을 거둬 해결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출 청소년이 불량 가출팸을 찾지 않도록 생존을 위한 공간부터 마련해줘야 한다. 독일의 기숙사형 대안 치료 교육시설인 ‘청소년 하임(heim)’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가출 청소년이 미래의 잠재적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걸 막으려면 맞춤식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합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 개조(改造)’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국가의 주요 책무다. 아울러 그 못잖게 주요한 책무가 바로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20만여 ‘가출 청소년의 세월호’를 구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국가 개조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세월호#가출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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