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지문]재난 보도 문제 많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살아남은 사실이 죄스러워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기 안산 단원고의 교감 선생님이 극단적으로 보여 주었듯이 희생이 큰 사고의 생존자에게 생존은 가혹한 짐이고 형벌일 수 있다. 여기서 ‘생존자’에는 배에 탔다가 살아서 구출된 학생뿐 아니라 사망, 실종자의 모든 가족이 포함된다. 조난자들의 귀환을 소망하는, 그리고 명복을 비는 노란 리본에 절대적으로 많은 메시지가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이다.

사실 ‘세월호’라는 좀 불길한 이름의 배의 정체와 우리나라 해운업계의 실상을 알았더라면 어떤 부모도 자식을 그 배에 타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운 마피아’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그 운항의 얽히고설킨 검은 내막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을 ‘지켜 줄’ 방법은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당하는 재난 중에서 천재지변보다 인재는 훨씬 더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천재지변은 ‘운명’이라고 체념할 수 있지만 인재는 원망과 증오, 안타까움, 후회 등 복합적인 감정의 후유증을 길게 남긴다. 그래서 인재의 희생자, 생존자는 각별한 보살핌과 치유가 필요하다. 이는 또 조용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언론 보도는 생존자들에게 참으로 잔인했다. 언론으로서야 국민적 경악과 슬픔을 반영하고 사실을 신속히 보도할 ‘사명’을 느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여 준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는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 보도 규칙’을 거의 다 어긴 것이었다. 재난 보도 규칙이 언론을 위축시키고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겠는가. 과거의 재난 상황에서 과열 취재의 폐단이 많았기 때문에 언론이 역작용을 내지 않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언론은 유언비어를 걸러내야 하는데 종합편성채널 MBN은 18일 자칭 민간 잠수부라는 홍가혜 씨(26·여)가 “배 안에서 생존자의 신호를 들었다고 해서 구조하려는데 해경의 저지로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터뷰를 내보내 조난자 가족의 속을 휘저어 놓고 국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했다. JTBC는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여학생에게 “친구의 사망사실을 알고 있는가”라고 물어서 여학생의 가슴에 못을 박았고, 최근에는 20시간 연속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이빙벨의 투입을 해경이 막고 있다는 이종인 씨(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을 방영해서 또 한번 국민의 불만을 들끓게 했다. 이럴 때마다 국민은 언론의 조종에 분노하고 우는 꼭두각시가 된다.

근접 촬영을 자제하고 자극적 장면을 보도하지 않으며, 유언비어의 확산을 방지해야 하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보도하지 않고, 생존자와 피해자의 신상공개를 자제하며 그들의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감소하는 데 주력하라는 재난보도 규칙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상당수의 한국 언론이, 안전수칙을 깡그리 무시한 선박회사들과 닮았다면 너무 뼈아픈 말일까.

그 비참한 심정의 부모들이 슬픔과 분노를 극복하고 다른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먼저 간 자녀들을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정상적인 삶, 웃음이 있는 삶을 다시 찾도록 우리 모두 조용히 성원해야 한다. 그리고 엉겁결에 ‘생존자’가 된 학생들이 자책과 분노에 압도당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생의 꽃을 피워 먼저 간 친구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이번 사고의 생존자는 누구의 죽음의 대가로 생존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 사고의 원인인 온 국민의 안전 불감증을 수술해서 철저히 도려내고 우리 관료사회와 민간업계의 얽히고설킨 비리 유착 관계를 완전히 혁파해 망자들에게 사죄하고 산자를 살려야 한다. 언론이 그 파수꾼이 되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세월호#재난보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