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혜령]보육원 퇴소 아이들의 홀로서기를 위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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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령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 아동자립지원사업단 단장
신혜령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 아동자립지원사업단 단장
보육원에서 자란 초등학생이 후원자 댁에 초대받아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가정에서 처음으로 식사를 하게 된 아이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숟가락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늘 시설의 대형 식당에서 또래들과 장난하며 식사를 하던 아이가 오붓한 가족의 식사 분위기에 당황한 것이다. 이처럼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조차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어색하고 낯설다. 그런 아이들이 만 18세가 되면 아무런 준비 없이 보육원을 떠나야 한다.

아이들은 당장 의식주부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시설에서 주는 밥만 먹고 자란 아이들에게 연필 한 자루, 책 한 권, 학용품 하나 직접 사는 일도 낯설다.

제도적으로 주거, 진학, 생활지원 등의 방안이 어느 정도는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마다 적용에 차이가 있고 규정이 십수 년 전에 만들어져 현재 아이들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례로 국토교통부에서 시설 퇴소 아동을 대상으로 1000여 채의 전세주택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이용은 200여 채에 그친다. 이유는 주택 신청 연령이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18세 퇴소를 염두에 두고 신청 연령을 22.5세 이하로 제한해둔 탓에 현재 대학 진학 아동이 50% 정도 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나이 제한에 걸려 주택 신청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대학에 입학할 경우 졸업할 때까지는 보육원에 남을 수 있지만 졸업하면 퇴소해야 하는데 이 역시 홀로서기가 힘들다. 이들에게 맞는 수요자 중심의 제도 운용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가 주는 자립지원정착금도 100만∼500만 원에 불과한데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할 아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마저도 자치단체에 따라 액수가 달라져 어느 지역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지원금이 다르다.

자립정착금은 최소한 월세 보증금 정도로는 책정돼야 한다. 보증금이 있으면 아이들이 부담해야 할 월세가 낮아질 수 있으니, 이제 막 보육원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다.

자립정착금을 많이 주면 줄수록 아이들의 첫출발이 쉽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돈이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져보는 큰돈에 흥분해서 그냥 사고 싶은 것을 산 뒤 당장 어려움에 봉착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양육 기간에 지속적으로 바깥에서 자립할 수 있는 생활 기술을 가르치고 본인의 자립 의지를 키워주는 것이 돈을 많이 쥐여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다.

또한 심리적으로나 지적으로 역량이 부족해 아무리 생활 기술을 가르쳐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제도적 방안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단적인 예를 들어 지능지수(IQ) 71∼84의 이른바 ‘경계선 지적기능아동’은 현재 장애인 판정도 받을 수 없으며 자립생활도 가능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2013년 시설 실태조사에 의하면 이런 범주의 아동이 16%(판정 및 의심아동 포함)나 된다. 이들이 홀로 사회에 나가는 순간 혹독한 바깥세상에서 남들에게 이용·착취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들에게는 성인기까지 주변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늘 대책만 발표되고 예산은 확보되지 않아 아무리 문제가 지적되어도 용두사미로 끝나는 사안이 너무 많다. 최근 동아일보에서 ‘18세 퇴소가 무서운 보육원 아이들’이란 기사(4월 7일자)를 보도한 이후 국회에서도 이들의 홀로서기 보완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만큼은 제발 필요한 예산 및 인력이 확보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신혜령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 아동자립지원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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