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찬]임원 연봉 공개, 허점 많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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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
12월 결산 상장회사들이 2013년도 사업보고서 제출과 함께 등기임원들의 연봉을 공시했다.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2002년부터 학계와 시민단체가 줄곧 요구했던 사항이 실현된 순간이었지만 이번 공시는 중대한 허점들로 제도 도입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우선 공시 대상자에 미등기임원이 제외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회장, 부회장, 사장 등 아무리 중요한 직책을 갖고 있고 아무리 고액연봉을 받아도 공시의무가 없다. 회사경영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임원이 회사의 장기성과와 연동된 보수를 받도록 유도하는 것이 법 개정의 취지인 점을 감안할 때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상당수 재벌 총수와 가족들이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기임원을 맡지 않고 있고 배임·횡령 등으로 더 많은 총수가 등기임원직을 사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공개된 임원들의 보수가 회사의 경영성과에 연동돼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드러난 것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횡령 혐의로 수감 중이었음에도 총 301억 원의 보수를 받은 총수가 있는가 하면 총수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대표이사보다 두 배나 많은 보수를 받은 이사도 있었다. 미등기임원이더라도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거나 수령 보수총액이 크면 의무공시 대상자에 포함시킬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미국처럼 등기임원 여부와 무관하게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그리고 그 밖의 보수총액 기준 상위 3명을 의무공시 대상자에 포함시키는 것이 그 방안이 될 것이다.

둘째, 연봉 산정기준 및 방법에 대한 공시가 전혀 없는 것이 문제다. 개정법은 구체적인 산정기준과 방법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부의 시행방안은 회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는 기업 편의를 봐주기 위해 정부가 스스로 법을 어긴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연봉 총액만 공개되고 어떻게 이 금액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 주주 입장에서는 어느 성과지표에 따른 것인지, 사용된 성과지표는 적절한지 전혀 평가할 수 없다. 심지어 공개한 보수가 2013년도 성과에 따른 것인지 2012년 이전 과거 성과에 따른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이렇게 무성의한 공시는 공시 대상 임원들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장기성과(예컨대 과거 3년 동안의 성과)에 보수가 연동된 경우 비록 직전 연도에 회사가 적자를 보았더라도 그 이전 2년 동안의 성과가 좋았으면 직전 연도에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공시되지 않을 경우 연봉이 높은 해당 임원은 파렴치한 경영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 외부 주주와 조직 구성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도 자세한 산정기준과 방법이 공시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정부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율공시로 회사들에 맡긴 것도 기업 대부분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사정을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갈 수는 없다. 회사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먼저, 이사회 하부위원회로서 보상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해 임원 보수의 산정기준과 방법을 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대형 상장법인에만 우선적으로 보상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함께 기업공시서식작성기준의 개정을 통해 몇 가지 주요 사항들을 의무적으로 공시토록 해야 한다. 상여금 근거가 되는 성과지표, 상여금 중 이연보상 금액, 그리고 성과에 따른 이연보상의 조정금액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재계의 반대로 임원의 개인별 보수공시 의무화는 무려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의무공시 대상자 확대와 공시내용 확충에는 이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 소요되기를 바란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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