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인평]서울대 성악과 교수들 모두 물러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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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
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
서울대 성악과 소식을 접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도를 넘는 파벌 싸움에 성추행 소식까지 접하면서 대학교수 사회 이야기라기보다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오죽하면 대학 본부에서 성악과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으며 스스로 판단 능력을 잃었다고 보고 폐과까지도 고려하고 있을까. 그런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이번 일은 보통을 넘어선 상태로 보인다.

내용을 뜯어보면 이게 과연 최고 국립대학인 서울대에서 벌어진 일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퇴직 후 파벌 싸움으로 충원을 못해 교수 8명이 있어야 하는 학과에 교수가 달랑 4명밖에 없다는 것도 기가 막힐 일이고 설상가상으로 불법 고액 과외, 학력 위조, 제자 성추행, 협박 전화 등 여러 의혹이 다발로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성악과 교수 자신들이다. 만약 상식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서울대 성악과 교수들이 모두 물러나야 마땅한 게 아닌가 싶다. 염치가 있다면 도무지 남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의 망신을 집단으로 당하는 상태에서 제자들을 무슨 낯으로 대할 것인가. 선생들의 모습에서 제자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사태의 근본은 예능계 파벌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파벌 간의 골이 이토록 깊어진 것일까? 이것은 대학 교육을 도제식으로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부 음악대학에서는 입학 후 지도교수가 한 번 정해지면 졸업 때까지 전공 지도교수를 바꾸지 않는 곳들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누구는 누구 제자’라는 줄 세우기가 시작된다. 제자들 처지에서는 지도교수에게 찍히면 음악 인생이 끝장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지도교수 음악회가 열리면 표도 사 주어야 하고 박수부대 노릇도 해야 하며, 선생님의 이삿짐도 날라 주어야 하는 등 스승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확실한 눈도장을 찍으려 애쓰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심지어는 제자들이 교수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해도 그냥 감내해야 한다.

일부 교수들은 퇴임하고 나서도 자기 제자들을 학교 안에 넣으려고 공작을 하기까지 한다. 교수 채용 과정에서 소위 ‘대선배’가 마치 마피아나 되는 것처럼 이리저리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것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대학 사회에는 더욱더 줄서기가 강화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없앨 수 있을까. 우선 대학 내 파벌을 없애는 첫 단추로, ‘누구는 어느 선생의 제자’라는 줄을 지우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해마다 지도교수를 바꾸어 여러 선생에게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 외부 심사위원을 대폭 개방하는 것이다. 지금도 외부 심사위원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폭을 더 확대해야 한다. 심사위원 구성권을 학과에 맡기지 말고 객관성이 높아지도록 5배수 정도 추천을 받고 이를 토대로 본부에서 지명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 객관성을 높이려면 심사위원 한 사람 점수가 결과를 좌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심사위원이 낸 점수 중에서 최고점과 최저점을 버리고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 채점 방법은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음악콩쿠르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다보니 동아일보 경연대회가 공정하다는 평을 받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대학 성악과라는 곳이 노래 솜씨만을 연마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에서 예술을 가르치는 이유는 가요학원에서 노래를 가르쳐 대중가수로 성공시키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그러자면 교수 선발 기준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학교수가 되려는 사람의 인생관, 교육관, 예술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서울대 성악과는 씻을 수 없는 망신을 당했다. 이러한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재발 방지를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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