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지순]갈등 해결 또 다른 시험장 될 통상임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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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던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거쳐 지난해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바와 같이 판결문에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의 상반된 입장을 조정하려고 대법원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렇지만 고정성(업적이나 성과, 기타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사전에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것)과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등 일부 쟁점을 놓고 기업 현장에서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주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에 관한 법령 정비가 이뤄질 때까지 대법원 판결의 해석을 둘러싼 혼란과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잠정적인 지도지침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지도지침을 둘러싸고 다시 한번 노사 간 갈등이 증폭될 조짐이다. 민노총은 고용부의 지도지침이 대법원 판결보다 기업에 더 유리한 해석을 내놓았다고 주장하며 지침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주장대로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집단 투쟁까지 하겠다고 예고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를 수도 있지만 고정성 판단의 핵심 쟁점이 된 이른바 ‘지급일 재직 요건’이 정기상여금에도 적용되는지에 대해 노동계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반발할 사안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고정성 판단 기준은 모든 금품에 적용된다는 전제하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에 대한 고정성 여부를 판단했다. 판결 대상인 갑을오토텍 사건의 정기상여금에도 이 기준을 적용해 상여금 지급 대상 기간 퇴직한 근로자에게 근무일수에 따라 일할 계산해 지급했다는 점에서 고정적인 임금으로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지급일 재직 요건의 유효성 여부를 포함한 해석상 논란은 법원이 판단하면 될 일이다.

신의칙에 관한 사항도 그렇다. 과거 기준에 따라 이뤄진 기존 노사합의를 존중하되, 공평하고 노사의 상생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새롭게 적용하라는 것이 대법원 판결에 담긴 뜻임은 다수가 인정하고 있다.

결국 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는 기업마다 현행법에 따라 새로운 임금체계와 통상임금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단기적인 이익 다툼에 몰입하여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기보다는 일방적 주장만을 관철하려 한다면 결국 노사 모두에 큰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

논쟁의 원인은 이른바 한국형 임금체계의 문제점 때문이다. 임금체계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분쟁과 혼란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상임금제도 개선도 궁극적으로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돼야 한다. 기본급 현실화, 상여금 실질화, 성과급제 도입, 직무급 반영 등 그동안 과제로 제기되어 온 임금체계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실현해 가면 통상임금 기준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특히 이번에 기업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정기상여금만 하더라도 소정 근로의 대가 부분과 보너스 부분 그리고 기업이나 개인의 성과를 반영하는 부분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단기적 진흙탕 싸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통상임금 범위를 법률에 명문화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법령에서 통상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거나 제외되는 임금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든가, 노사자치를 명시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노사 협력과 타협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사단체가 현장의 갈등을 유발하기보다 공정하고 상생적인 규칙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생산적인 모습이 될 때 우리 사회 미래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생기지 않겠는가.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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