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호]증오의 입법을 멈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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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프리덤팩토리 대표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프리덤팩토리 대표
필자는 올 8월 시민 731명이 출자해서 만든 싱크탱크 프리덤팩토리의 대표이사로 있다. 첫 사업이 의원입법안 평가인데, 일을 하면서 한숨을 쉴 때가 많다. 이런 것도 법인가 하는 수준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법안만 해도 그렇다. 사내유보금이 뭔지나 알고 법을 만드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법안을 발의한 추미애 의원의 발언을 보라. “복지재원 등이 부족한데도 정부가 법인세율 인상을 반대하는 상황이니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그냥 갖고 있는 사내유보금에 과세하자는 것….”

추 의원은 투자하지 않고 그냥 갖고 있는 돈을 사내유보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틀린 생각이다. 사내유보금은 투자하지 않은 돈이 아니라 이윤 중 배당하지 않은 돈이다. 현금 형태로도 존재하지만 상당부분은 공장이나 기계, 특허 형태로 투자되기도 한다. 형태가 뭐든 회계상으로는 사내유보금(이익잉여금)으로 잡힌다. 투자를 안 하고 남아 있는 돈을 굳이 부른다면 현금성 자산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사내유보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보’라는 회계 용어를 일반 명사로 해석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기업들의 사내유보금 총액을 1071조 원이라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사내유보금의 80%가 기계나 설비 형태로 존재한다고 한다. 즉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할 경우 그것의 80%는 설비투자에 대한 벌금인 셈이다. 따라서 투자 촉진을 위해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긴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나라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목적은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함이지 투자를 촉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주주는 배당을 받으면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사내유보를 하면 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주주가 몇 명 안되는 개인회사 성격의 기업들은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사내유보를 할 수도 있다. 이런 폐단을 바로잡으려면 작은 기업, 개인회사 성격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사내유보금 과세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인영 의원 등이 발의한 사내유보금 과세법안을 보면 작은 회사는 제외하고 오히려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는 사내유보금 과세 방안은 투자를 촉진하지도, 조세 회피를 막지도 못한다. 그저 재벌에 대한 증오일 뿐!

따지고 보면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률의 대다수가 이런 증오를 담은 법률들이다. 예를 들어 ‘××마트 상품공급점’을 규제하는 법률안을 생각해 보자. 이 상품공급점은 ‘동네 슈퍼’들이 대형마트로부터 양질의 제품을 염가로 공급받는 방식이다. 기존 도매점들과의 거래보다 낫기 때문에 동네슈퍼들이 자발적으로 그 방식을 택했고, 동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마트 상품공급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마트와 동네슈퍼 간의 모범적인 상생 사례인 셈이다. 그런데 도매점들이 반발한다고 심재권, 김제남, 이언주, 이강후 의원 등은 상품공급점을 규제하는 법을 발의했다. 대형마트를 벌주기 위해서라면 영세상인을 핍박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증오의 법이다. 순환출자도 그렇다. 이것을 금지한다고 좋아지는 중소기업은 없다. 다만 재벌총수들이 괴로워질 뿐이다. 하지만 입법자들에겐 그 효과만으로도 충분하다. 총수만 괴롭힐 수 있다면 이익 같은 건 없어도 된다는 정서가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관통하고 있다. 이런 법들이 대중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경기부진, 저품질·고물가, 일자리 부족이라는 부메랑이 돌아옴도 생각하길 바란다.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프리덤팩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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