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칠용]안료도 못 만들면서 전통을 논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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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에서 복원 5개월여 만에 1, 2층 누각에서 100개가 넘는 균열과 변색, 박리(나무에 새긴 그림과 글씨가 갈라지고 일어남)와 박락(깎여서 떨어짐)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숭례문은 물론이고 전국 주요 목조문화재의 단청, 목공사, 석공사, 철문 등에 대해 정밀 조사를 추진하고 이에 대한 종합 점검을 실시한다고 나섰다. 종합 점검 이외에도 전통기법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 전승을 위해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를 건립하는 등 제도적, 기술적 방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전통기법’의 수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청 작업에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아교나 호분(조개껍데기를 갈아 만든 백색안료)을 만들어 내기도 어렵고, 각종 안료도 대개가 외국산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타계한 단청장 이치호 선생은 ‘단청의 전통 복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단청 일을 배우려면 우선 물욕을 떠나야 한다. 이 일을 하면 먹고살기 힘들 것이다.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10여 년을 두고 고행을 해야 하는데 수도자 같은 정신이 필요하다.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욱더 한심스러운 것은 페인트칠이나 할 사람들이 단청을 한답시고 전국의 유명 사찰, 고적을 망치며 다니고 있으니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통탄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청 작업에 필요한 호분과 아교 대부분을 일본과 중국에서 수입한다. 필자는 1990년 호분을 공부하기 위해 전남 여수에 있는 ‘천일호분’을 찾은 적이 있다. 이 회사 김호성 대표는 2대째 호분 연구와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호분은 고려시대부터 굴 껍데기를 태워 만들어서 썼다. 청자 도공들도 고려청자에 호분을 썼다. 서양에선 고급 미술재료로 쓰였으며 특히 미국에선 ‘오스칼’이라는 칼슘보충제로 사용하는 등 수요처가 매우 넓어서 김 대표는 깊은 관심을 갖고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움이 너무 많아 좌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단 좋은 굴 껍데기를 수집해야 하고 야외에서 4, 5년간 쌓아 두면서 굴 껍데기에 붙어 있는 이물질이 자연스럽게 제거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공정 과정이 8단계나 되기 때문에 원가가 매우 높았다. 김 대표는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반 페인트를 쓰는 단청은 보존기간이 2, 3년에 불과하지만 호분을 쓰면 80∼100년은 거뜬히 가기 때문”이라면서 “문화재청에 도와 달라고 호소도 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했다.

전통과 전승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에 대해 일본의 현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옻칠을 하는 칠기 장인들의 칠붓이 대표적이다. 옻칠 붓의 재료는 18∼20세 여성의 긴 머리털이다. 한 번도 파마나 염색을 하지 않고 샴푸 같은 인공세척제로 감지 않은 머리카락이어야 하며, 해초를 많이 먹은 여성들의 머리털을 최고급으로 쳐준다고 한다. 일본에선 지금도 이런 붓이 전승되는데 이는 오래전에 여성들이 머리를 잘라 절(사찰)에 기증했던 것이 전해지는 덕분이라고 한다.

옛것에 대한 제대로 된 복원이 요구되지만, 관심의 대상은 공예장인이나 단청장 등에 집중돼 있다. 우리 재료를 생산하는 이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전통기법을 논할 때 재료의 전통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업계의 현황을 파악해서, 국내 재료를 검증하는 시스템부터 갖추고 재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지도하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숭례문#복원#전통기법#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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