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지훈]아랫돌 빼내 윗돌 괴는 경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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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사회부
이지훈·사회부
초동 수사 부실로 물의를 빚은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 이후 일선 경찰관 사이에선 실종수사전담팀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눈치작전이 한창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실종 수사를 강화한다며 현재 서울 8개 경찰서에 있는 실종수사팀을 나머지 23개 경찰서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과 함께 실종 수사를 맡는 여성청소년과 형사 일부를 떼어내 실종수사팀을 만든다는 게 경찰의 대책이다. 추가 인력과 예산은 없다. ‘돌려 막기’ 조치다. 일선서 여청과 형사는 “지금도 부서 인력이 부족한데 일부에게 실종 사건을 전담시킨다고 해도 일반 사건이 터지면 다 동원될 수밖에 없다. 실종담당 형사는 업무만 늘어날 게 뻔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체 실종 신고 가운데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된 비율은 0.03% 수준이다. 실종담당 경찰은 10000건 중 3건에 대비해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역으로 10000건 중 997건은 별일 아니라는 생각에 안일해지는 게 현실이다. 한 경찰관은 “범인을 잡으면 포상을 받지만 실종자는 찾아도 당연시된다. 십중팔구 돌아올 텐데 공들여 찾으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찰에 실종 수사는 ‘폭탄 돌리기’ 같다. 실종 신고를 부실하게 처리해 형사사건 피해로 이어지고 그 결과 징계를 받으면 “운이 나빠 걸렸다”는 생각이 앞선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그대로 둔 채 실종전담팀을 확충한다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인력과 예산도 없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식이라면 여론의 소나기를 잠시 피하려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은 실종전담팀이 부족하거나 매뉴얼이 부실해서 생긴 참극이 아니다. 경찰이 피해 여중생의 실종 신고를 ‘코드1’으로 분류하고도 출동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최종 행적을 확인하지 않아서다. 이미 있는 인력과 매뉴얼을 활용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잘 갖춰진 시스템이 있는데도 왜 경찰이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경찰은 2012년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112신고체계를 확 뜯어고쳤다. 112상황실이 전문성을 중시하는 조직이 되면서 능력 있는 경찰이 대거 포진했다. 실종 수사에 당장 인력과 예산을 늘리기는 어렵다. 오원춘 사건 때처럼 전문성을 가진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할 대책이 필요하다.

이지훈·사회부 easyhoon@donga.com
#경찰#초동 수사#이영학#어금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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