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훈]경제 멍드는데… 기재부는 집안 밥그릇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옛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 라인… 産銀(산은)-輸銀(수은) 통제권 놓고 줄다리기
저성장-트럼프쇼크 대책은 헛바퀴

이상훈·경제부
이상훈·경제부
 “은행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정부가 점수를 매기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정부가 출자한 기관을 감독하지 말자고 주장하다니, 대한민국 관료 맞습니까?”

 기획재정부가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을 공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터져 나온 엇갈린 비판들이다. 공기업으로 지정되면 규제가 많아지는 만큼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취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불만의 출처가 금융권 등 외부가 아니라 정부, 그것도 기재부 내부였던 것이다.

 일각에선 2008년 옛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기재부로 합쳐진 뒤 수면 밑에서 쌓여 왔던 내부 갈등이 정책금융기관 공기업 지정으로 폭발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공기업 관리 강화’와 ‘자율성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해당 기관을 자신들의 휘하에 두려는 속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는 예산처 라인(재정, 공공정책)은 이번에 정책금융기관 통제를 강화할 태세다. 반면 거시정책을 담당하는 재경부 라인(거시경제 등)은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금융위원회 편을 들고 있다.

 차기 정권에서 기재부가 다시 쪼개질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이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재경부 라인과 금융위가 다시 합쳐지면 예산처 라인은 ‘남의 식구’가 된다. 따라서 그쪽에 산은 등의 통제 권한을 주는 일만은 막겠다는 계산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기재부 관료들은 이런 분석을 애써 부인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상대방 라인에 대한 험담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에도 양측은 심각하게 대립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나랏돈을 풀자’는 재경부 라인과 ‘효과가 없고 나라 살림만 축낸다’는 예산처 라인이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정책 논쟁으로 시작된 갈등은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도 안 하는 수준으로까지 악화됐다.

 산은 공기업 지정을 두고 기재부에서 벌어진 힘겨루기는 탄핵 정국에서 정부의 내부 기강이 얼마나 풀렸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 신세라는 건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3년 연속 연 2%대 저성장이 예상되고 저출산 고령화, 트럼프 변수 등 결코 쉽지 않지만 처리를 늦출 수 없는 현안도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기재부가 집안싸움에 빠져 있다는 건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1995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재정경제원으로 합쳐진 뒤 조직 갈등을 겪다가 2년 만에 외환위기를 겪은 일이 데자뷔처럼 떠오른다.

이상훈·경제부 january@donga.com
#기재부#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예산#추경#공기업#트럼프 쇼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