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훈상]자료 폐기 안했다? 특감실의 오리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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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이석수 수사]

박훈상·사회부
박훈상·사회부
A4 용지 1만 장. 본보가 23일 입수한 특별감찰관실의 파쇄 문건이 어느 정도 분량인지 추정해 본 결과다.

파쇄 문건이 담긴 검은색 대형 비닐봉지 4개의 무게는 40∼50kg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A4 용지 한 박스에는 2500장이 들어 있다. 무게는 12kg 정도다. 이에 비춰 보면 A4 용지 1만 장 이상을 파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매일 한 차례씩 트럭이 각종 쓰레기를 폐기장으로 실어간다. 그렇다면 이 방대한 문건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22일 휴가에서 복귀한 이후 파쇄해 버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왜 그렇게 급하게 폐기해야 했을까.

본보는 폐기 문건을 입수하자마자 특별감찰관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알겠지만 여기 파기할 서류가 뭐가 있겠느냐”고 했다. 특별감찰관실은 이어 24일 ‘특감, 감찰자료 무더기 폐기’라는 본보 보도(A1·4면)에 대해 “신문 스크랩 자료나 통상 폐기해야 할 시점에 있는 문건을 파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본보가 특별감찰관실 폐기 문건을 일부 복원한 결과 주민등록등본 원본, 원본 직인이 찍힌 관청이나 회사 서류 등이 다수 눈에 띄었다. 원본을 2부씩 발급받아 한 부는 보관하고 다른 한 부는 폐기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본보는 또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 개인정보, 대통령수석비서관 관련 첩보, 각종 첩보 수집 경위, 조사 대상자의 진술 기록, 특별감찰관실 세부 조직도 등도 복원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밀에 속하는 공공기록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은 명백히 위법이다.

만약 폐기된 비닐봉지 속에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수사 의뢰 검토 자료’가 들어 있다면, 특히 특별감찰 결과 별다른 성과가 없다거나,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 어렵다는 내부 검토 보고서가 포함돼 있다면 명백한 증거인멸에 해당한다. 이 특별감찰관은 특정 일간지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누설한 대화록이 공개되면서 특별감찰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피할 수 없다. 검사 출신인 그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일반적인 검사 출신의 상식이라면 통상적으로 파쇄하는 문건도 그러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이 정상이다.

기자는 대다수 국민과 마찬가지로 이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속 시원히 파헤쳐 줄 것을 바란다. 그러나 감찰 내용 누설에 이어 무더기 자료 폐기까지 잇단 개운치 않은 행태로 이런 열망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특별감찰관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박훈상·사회부 tigermask@donga.com
#자료폐기#특감#이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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