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동진]지성의 전당에 책임-타협 실종… 상처만 남긴 梨大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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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 단과대학 신설을 놓고 학교 측과 학생들이 날 선 대립을 하느라 유난히 뜨거웠던 이화여대 교정에 3일 한 줄기 미풍이 불어왔다. 본관을 사수하며 학교의 비민주적인 행정을 규탄했던 시위대는 “학생들이 받은 상처에 미안하고 사과한다”며 고개 숙인 최경희 총장에게 “감사하다”고 작게 화답했다. 일주일째 끌어온 ‘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45시간 교수 감금과 1000여 명의 경찰력 동원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연출한 이화여대 사태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단상’을 여럿 내포하고 있어 단순히 학내 분규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초 10개 대학이 선정됐던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은 유독 이화여대에서만 반대 시위가 이어지면서 ‘학벌 이기주의’ 논란을 불렀다. 교육 소외층에 대한 학문 기회 제공이라는 취지에도 시위대는 ‘학위장사’라는 논리로 학교를 몰아세웠다.

사회의 소외된 인재를 발굴하겠다던 학교는 정작 내부 학생들은 소외시킨 ‘불통’ 행정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학교는 농성 닷새 만에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자비한 말을 퍼뜨리고 있다”며 학생 탓을 했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벌어진 갈등 해결 과정에서 제대로 된 대화는 보이지 않았다.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압박만 난무했다. 학교와 학생 모두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정작 민주주의의 기본인 ‘책임’과 ‘타협’의 모습은 사라졌다.

시위대는 졸업장 반납과 농성장 공부 시위, 갓난아기를 업고 온 시위자 등을 내세워 순수한 평화 시위라고 주장하지만 경호업체 동원과 교직원 감금 혐의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주동자 없이 익명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됐다는 시위도 많은 한계를 보였다. 마스크와 선글라스가 상징하는 익명성 뒤에는 무책임이, SNS와 e메일을 통한 일방향 소통에선 그토록 규탄하던 학교의 ‘불통’이 오버랩됐다. 감금 후유증을 토로하는 교수 면전에서 야유를 퍼부은 학생 중 어느 하나도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교정을 벌집으로 만든 졸속 행정과 일주일간 묵묵부답 대응으로 일관했던 학교와 최 총장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화여대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에는 이번 시위를 ‘집단지성의 표본’ ‘진화한 시위’ ‘이화주의(발전된 민주주의)’라며 자축하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책임과 타협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하기만 하다. 이제라도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반성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을까. 그것만이 130년 전통의 학교와 학생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진정한 ‘이화주의’를 이끄는 길이다. 아픔 뒤에 한층 성숙해진 이화여대의 가을을 기대한다.

신동진·사회부 shine@donga.com
#이화여대#이대#평생교육단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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