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은택]정책실패 ‘原罪’ 모른척… 대학만 옥죄는 교육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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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육부의 대학 정원 감축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등록금 인하 문제가 화젯거리로 올랐다.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대학 구조개혁 평가를 실시해 정원 감축을 압박하고 있다. 또 ‘금수저 논란’이 일고 있는 로스쿨을 압박해 2학기부터 등록금을 약 15%씩 내리도록 했다.

사실 교육부의 정책들은 그만한 필요성이 있다. 대학들도 인정한다. 그러나 대학들의 불만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지금의 잘못된 상황을 만들어낸 교육부는 정작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교육부가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해 신생 대학을 대거 늘리는 과정에서 심사에 참여한 한 교수는 이날 “당시에도 인구통계 전망을 보면 대학을 마구 늘리는 게 곧 문제가 될 것이 뻔히 예측됐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이를 무시하고 지역 정치인 등을 의식해 우후죽순으로 늘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정원을 줄인다고 난리지만, 그때 그 많은 대학에 인가를 내준 교육부 장관, 실장, 국장, 과장들은 왜 아무런 책임도 안 지느냐”고 말했다. 다른 교수는 “교육부 고위 관료가 퇴직하면 지방대 총장이나 교수로 가는 일이 많았다. 스스로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그런 것 아닐까”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로스쿨 문제도 교육부의 ‘원죄(原罪)’가 크다. 참여정부 당시 교육부가 전격적으로 로스쿨 도입을 결정하면서 전국 대학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선정 권한을 쥔 교육부는 시설 규모와 교원 확보율 등을 너무 높게 제시해 대학가의 출혈경쟁을 부추겼고, 로스쿨들은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해 등록금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학생 1인당 매년 1500만∼2000만 원씩 등록금을 걷는 사립대 로스쿨도 등록금만으로는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교비와 재단 돈을 끌어 쓰고 있다. 교육부의 요구대로 로스쿨의 등록금은 낮추고 장학금은 유지하려면 다른 학생들의 몫으로 돌려 막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한 교수는 “금수저 출신들만 간다는 논란을 빚고 있는 로스쿨의 운영비를 메우기 위해 인문대 자연대 사회대 학생들의 등록금을 끌어다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교육부가 매년 2조 원가량의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을 쥐고 있는 ‘갑’인지라 대학들은 숨죽여 왔다. 그러나 “교육부의 갑질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서울 주요 대학 총장들은 공동 대응을 위해 모임을 결성했다. 교육부가 자신의 과오는 덮어두고 대학에만 책임을 전가한다면 교육부를 향한 반발과 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은택·정책사회부 nabi@donga.com
#교육부#대학#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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