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미세먼지 대책이 1급 국가기밀? 언론 보도 때마다 “유출자 색출”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7일 10시 43분


코멘트
이정은 기자
이정은 기자
“회의 안 열린다는데요? 아직 통보도 못 받으신 거에요?”

미세먼지 종합대책 논의를 위해 25일 예정됐던 관계부처 차관급 회의가 돌연 취소된 당일 오전. 기자의 이런 질문에 환경부 공무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도 몰랐던 국무조정실의 일방적인 회의 취소 경위는 둘째 치고 미세먼지 대책을 올려놓을 협의 테이블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에 ‘멘붕’이 됐다.

경유값 인상을 포함한 미세먼지 대책은 이렇게 대책 없이 표류 중이다. 환경부는 5월 말 협의를 마무리 짓고 6월 초 종합대책을 발표하려 했으나 향후 일정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에너지 세제 개편이 포함되는 정책들은 재정당국의 참여 없이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왕부처’격인 기획재정부는 회의에 앞서 “경유값 인상은 아예 안건에서 빼라”고 요구할 정도로 노골적인 반대를 해왔고, 산업통상자원부도 경유가격을 건드리는 문제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재정당국 관계자들은 “일개 미세먼지 대책 때문에 유가를 건드릴 수 없다” “환경부가 턱도 없는 정책 갖고 언론플레이만 한다”며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런 부처 간 입장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조차 못한 채 국무조정실은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앞서 23일 관계부처 종합대책회의를 진행한 청와대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고 확인해줄 수 없다”고 부인으로 일관한다. 미세먼지 대책이 절대 공개돼선 안 될 1급 국가기밀이라도 되는 것 같은 태도다. 청와대는 관련 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환경부에 “유출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려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환경부 공무원들은 언론 접촉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놓고 있다시피 한 상황이다.

과거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정책들만 재탕, 삼탕 나열하다 뒤늦게 세금 문제를 끌어들인 환경부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사인 미세먼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면 부처 간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일단 머리는 맞대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부처 간에 힘겨루기를 해야 할 만큼 느긋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깨끗한 환경을 위한 비용을 어디까지 부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묻고, 필요하다면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모으는 절차도 밟으면 된다. 기재부 산자부 환경부 공무원들이 마시고 있는 공기는 다 똑같은 대한민국 공기 아닌가.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