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태호]신뢰추락 와중에… ‘公試 응시료’ 올리겠다는 인사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황태호·사회부
황태호·사회부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에서 매년 대규모 결시(缺試)가 발생하면서 인사혁신처가 20년 넘게 유지돼 온 응시수수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고위 관계자는 “시험지 인쇄와 고사장 임차 등에 매년 수억 원씩의 세금이 낭비된다”며 “이를 줄이기 위해 응시료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올해 9급 공채시험에서 원서를 제출한 사람은 22만1853명인 데 비해 9일 치러진 필기시험에 정상적으로 응시한 사람은 16만379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5만8062명은 시험장에 나오지 않았다. 인사처가 추산한 응시생 1인당 시험 비용은 1만 원. 하지만 수험생이 내는 응시료는 5000원에 불과해 나머지 5000원의 비용은 세금으로 메운다. 결시생이 한 명 생길 때마다 세금이 5000원씩 낭비된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런 현상은 수십 년째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직 공무원 공채 시험 응시료는 1993년 ‘공무원 임용 및 시험 시행규칙’에 따라 수수료 조항이 마련되고 나서부터 올해까지 24년째 그대로다. 응시생 규모와 시험 절차 등에 따라 국가직 7급 공채는 7000원, 5급 공채는 1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 응시료가 처음 책정될 당시에는 5000원으로도 전체 시험 비용을 대부분 충당할 수 있었지만 물가가 매년 오르면서 세금이 추가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인사처의 논리는 응시료를 적정 수준으로 올려 결시로 인한 세금 낭비를 없애고, 이른바 수익자 부담 원칙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응시료 인상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공무담임권’을 약화시킨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처럼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국민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다.

문제는 인사처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인사처는 화석(化石)처럼 굳어 있던 공직사회의 인사 업무를 개혁하기 위해 2014년 출범한 신생 부처다. 그동안 공무원 성과 평가제 확대, 공직자윤리법 강화 등 잇따른 개혁적 조치들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20대 대학생의 정부서울청사 침입사건으로 공직 인사 업무에 대한 신뢰도는 오히려 인사처 출범 전보다 더 떨어져 있다. 공무원시험 점수와 합격자 명단을 저장한 PC가 한 대학생에 의해 손쉽게 조작되는 실상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인사처의 응시료 인상 추진은 국민적 합의는커녕 거센 반발만 불러일으킬 게 뻔하다. 필요하다면 논의를 거쳐 검토해야겠지만, 그 전에 먼저 도둑이 안방을 휘젓고 다니지 못하도록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책을 내놓는 게 순서다.

황태호 사회부 taeho@donga.com
#공시#응시료#인상#신뢰추락#인사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