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2題/김준일- ‘그 정부에 그 국회’]대부업법 일몰, 서민 애타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高利대출 규제 급할것 없다는 국회

김준일·경제부
김준일·경제부
한국에 대출 금리의 제한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1월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시장경제의 원칙에 반한다”며 한국 정부에 기존 이자제한법(최고 금리 25%)의 폐지를 요구했다. IMF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당시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국내에 기업형 대부업체가 대거 등장한 게 이 무렵부터다. 최고 29%의 금리제한을 받던 일본 대부업체들은 한국을 ‘엘도라도(황금의 땅)’로 여겼다. 국내 사채업자들도 앞다퉈 등록하면서 대부업 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검색하면 ‘연리 300%’, ‘선(先)이자만 20%’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이후 살인적인 고금리가 지속됐고,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사회 문제가 됐다.

이를 방관할 수 없었던 김대중 정부는 2001년 이자 제한을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2002년 대출 최고금리를 66%로 제한했다. 다만 ‘시장경제의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일정 기간 뒤에 효력이 사라지는 한시법으로 만들었다. 이후 대부업법은 수차례의 법 개정을 통해 효력을 유지해 왔고, 현재는 최고이자율이 34.9%로 책정돼 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방패막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업법이 31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국회가 정쟁(政爭)에 골몰하면서 대부업법의 생명 연장을 담은 개정안의 통과 시기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당장 1월 1일부터 대부업체들이 금리를 50% 또는 100%로 매겨도 이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

보호막이 사라진 서민들의 부담은 크게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국회는 여전히 느긋하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올해 통과시키지 못하더라도 내년에 하면 되고, 또 대부업체들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이는 무책임한 낙관론일 뿐이다. 군소 대부업자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마음대로 약탈적인 이자를 매겨도 처벌할 방도가 없고, 설령 법이 다시 시행된다 해도 소급적용이 되지 않는 한 소비자들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가계부채가 연일 심각해지는데 금리 규제마저 사라지면 금융 취약계층들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마지못해 긴급 방안을 내놨지만 우려를 떨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국회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새로 좋은 법을 만들 자신이 없다면 기존에 있던 필요한 법이라도 유지시켜야 한다. 대부업법의 일몰(日沒)은 이제 단 하루 남았다.

김준일·경제부 jikim@donga.com
#대부업#대출규제#엘도라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