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정치’에 한발 더… 화법 달라진 반기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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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뉴욕특파원
부형권·뉴욕특파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1)이 적잖이 달라졌다. 기자가 체감하는 느낌이 그렇다. 리더의 자리에 있어도 참모나 관료처럼 느껴지던 그에게서 ‘정치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반 총장이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특파원단 송년 모임에 예고 없이 참석해 이른바 ‘물(水)의 정치론’을 펴면서 “내가 (물처럼) 조용한 것 같지만 강할 땐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반기문 화법’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별명이 ‘기름장어’다. 측근들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한다”고 별명을 풀이하지만 기자들 사이엔 “민감한 질문을 해도 핵심을 대답하지 않고 빠져나가기만 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했다. 시쳇말로 ‘기삿거리가 안 되는 인물’이란 얘기였다. 다른 나라 출신 유엔 출입기자들이 “반 총장 기자회견은 1시간 넘게 들어도 ‘제목’을 뽑을 만한 얘기가 없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반 총장이 해외 언론으로부터 ‘존재감 없는 사람(nowhere man)’이란 비판을 들어온 이유 중 하나도 그의 ‘물 타기 식’ 화법과 무관하지 않다.

그랬던 반 총장이 파리 기후협정 타결 이후 ‘화법도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14일 유엔출입기자협회(UNCA) 송년만찬에서 “유엔에 대한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엔이 주도한) 기후협정 체결은 유엔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세계에 보여줬다”고 힘줘 말했다. ‘유엔 70주년을 축하한다’는 벙벙한 내용의 지난해 연설과는 확실히 달랐고, 참석자들의 호응도 더 뜨거웠다. 반 총장은 이날 ‘사무총장의 고단한 일상’을 담은 코믹 동영상을 통해 ‘나는 하루 2시간만 자면서 365일 일해도 끄떡없는, 건강한 사람’임을 과시했다.

반 총장이 정치인 행보를 시작한 이상, 그는 이제 2017년 한국 대선의 변수가 아닐지 모른다. 여야 정치권 모두 그를 중요한 상수(常數)로 보고 대선판을 짜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만찬 자리였다.

부형권·뉴욕특파원 bookum90@donga.com
#반기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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