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여성 총리[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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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젊은 총리. 어제 취임한 34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에게 맨 먼저 붙은 타이틀이다. 대학 졸업 후 시의회를 거쳐 2015년 중앙정치 무대에 입성한 그는 6월 ‘젊은 피’로서 교통·커뮤니케이션 장관에 발탁된 터였다. 막상 본인은 “나이와 성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정치에 입문한 동기, 그리고 유권자의 신뢰만 의식한다고 말한다.

▷사실 핀란드, 나아가 유럽의 정치는 여성들이 접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린 총리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5개 정당으로 구성된 연립정부를 이끌게 되는데 당수 5명이 모두 여성이고 이 중 1명이 50대, 나머지는 30대다. 유럽연합(EU)도 ‘여인천하’다. 28개 회원국 중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독일을 비롯해 5개국을 여성 총리가 이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젊은 리더들도 속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곤차루크 총리는 8월 35세의 나이로 취임했고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는 2017년 37세에 총리가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금은 40대지만 취임 당시인 2017년에는 39세였다.

▷왜일까. 일각에서는 ‘유리천장이 깨졌다’는 해석을 내렸지만 “지금 체제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세대·성별 교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남성 기득권 체제와 기성세대가 고수해온 정통주의에서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환경 복지 이민 문제 등의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자각이 싹텄다는 것이다. 독일 디벨트지는 여성 리더 열풍을 “남성 지도자들이 저지른 정치적 잿더미를 치우는 새로운 ‘여성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핀란드에서 벌어진 일들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시대 흐름에 빠른 기업계에서는 최근 만 34세 여성 상무가 탄생한 LG 같은 기업도 나타났다. 정치권에서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 대망론이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세계 120위권이고, 40세 미만은 3명(비례 2명 포함)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한반도의 1.5배가량 면적에 인구 550만 명이 흩어져 사는 핀란드는 ‘재미없는 천국’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체제가 정비된 선진국이다. 인맥, 편법이 경쟁을 좌우하고, 권력이 일극으로 집중된 체제일수록 청년과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난마처럼 얽힌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복잡다기한 사회에서는 경륜도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세대교체 열망의 바탕에는 586세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깔려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여성총리#유럽 정치#유리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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