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中 외교부장[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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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한중) 양국 신뢰의 기초를 해쳤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직후인 2016년 7월 말 라오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을 만나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잠시 후 취재진이 물러가자 왕 부장은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며 윤 장관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공식석상에선 직설적이고 거친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사석에선 넉살 좋게 친밀감을 앞세우는 것이다.

▷시진핑 시대 외교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대만 갈등,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 ‘탈(脫)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의 ‘근육질 외교’다. 왕 부장은 2017년 3월 사드 배치 부지 발표가 나온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정신을 차려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잘못된 길을 가지 말라”고 했다. 국익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고 보복도 불사하는 힘의 외교 선봉장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왕 부장은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는 팔을 툭툭 치는 인사를 건네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기도 했다. 4일 이틀 일정으로 5년여 만에 한국을 찾은 왕 부장은 방한에 임박해 오찬에 손님을 ‘호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다. 2016년 한 캐나다 기자가 중국 인권에 의문을 제기하자 “중국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거만하다”고 쏘아붙인 일도 있었다.

▷미국은 국무장관이 각료 서열 1위이고 한국도 대통령 대행 순위 5위로 높지만 중국에서 외교부장은 27명의 장관 중 그다지 앞서는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왕 부장은 지난해 3월 시진핑 2기 정부에서 유임되면서 국무위원으로 승진했다. 5명의 국무위원 중 부장(장관)은 국방 외교 공안부장 3명뿐이다.

▷왕 부장은 국장 시절 제1차 북핵 6자회담의 중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중국의 비핵화 구상인 쌍중단, 쌍궤병행도 그가 처음 제기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뒤 주일 대사관에서 7년 반을 근무한 일본통인 그가 2004년 일본 대사로 부임한 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동중국해 가스전 분쟁 등 악재가 터졌다. 하지만 2006년 일본 총리로서는 5년 만에 아베가 방중하는 등 밀월기를 만들어냈다. 대만 담당일 때도 양안관계에 훈풍을 일으켰다. 이제는 동북아 이웃 국가 중 한국과의 ‘사드 결빙’을 푸는 일만이 남았다. 이번 방한 기간 ‘파빙지려(破氷之旅·얼음을 깨는 여행)’의 단초를 만드는 결실이 있기를 바란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왕이#한한령#사드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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