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학원 휴무[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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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등 사회지도급 인사가 자녀에게 과외를 시키면 사회 정화 차원에서 공직에서 추방한다.’ 신군부 집권 직후인 1980년 8월 단행한 ‘과외 금지’ 조치는 서슬이 퍼렜다. 10여 일 후 대구에서 주택가뿐 아니라 사찰 암자까지 뒤지는 일제단속에서 12건이 처음 적발됐다. 과외 시킬 돈이 없는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분도 내건 과외금지는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자녀 성적을 올리려는 부모 욕심과 학비를 마련하려는 가난한 대학생들의 필요가 만나 ‘몰래 바이트(불법 과외)’가 생겨나고 점차 고액 비밀과외도 성행하게 됐다. 결국 개인의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아 20년 만에 폐지됐다.

▷‘학원 일요 휴무제’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서울시교육청 공론화추진위가 시민참여단 논의 결과 학원 일요일 휴무에 찬성 62.6%, 반대 32.7%로 나타났다며 26일 도입을 권고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행한 ‘학원 야간 10시 제한’ 조치를 놓고 벌어진 ‘학습권과 휴식권’ 논란이 재연될 양상이다. 학생 휴식권과 학습권, 학원의 영업권 등이 복잡하게 얽혀 일요 휴무제는 법을 바꿔야 하는 사항이다.

▷심야 시내버스에서 졸고 있는 학생에게 건강 음료를 주는 제약회사 광고가 학부모들의 마음을 찡하게 할 만큼 한국 청소년의 생활은 학원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중학교 때부터 일요일에 학원을 다니는 학생 비율이 3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를 웃돌고 서울 강남구 조사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겪는 중고등학생이 43%를 넘었다. 일요 휴무제는 평일 밤늦게까지 별 보기를 하는 학생들에게 휴일 하루라도 쉬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의 학원과 교습소만 줄잡아 2만5000여 개로 위반해도 단속이 쉽지 않다. 심야 학원 제한 이후 스터디카페나 프리미엄독서실 등 변종 수업도 등장했다. 서울을 막으면 주변 신도시 학원가로 쏠릴 수 있다. 학원 대신 그보다 비싼 개인과외 수요가 늘 수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력과 정보력이 부족한 학부모들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

▷일요휴무제는 공급을 줄이면 수요도 줄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이 신뢰를 받지 못하며 입시 전쟁이 지속돼 필사적인 수요가 있는 한 어디를 틀어막아도 수요 자체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20조 원에 이른 사교육 시장이 계속 커져 가고 있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청소년들이 ‘학원 뺑뺑이’에서 빠져나오려면 학벌 위주 사회를 바꾸는 더 큰 변화가 없이는 힘든 일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학원 일요 휴무제#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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