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족 급증[횡설수설/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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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휴일근무를 포함해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근로시간단축제가 작년 7월 1일 도입돼 1년이 훌쩍 넘었다. 1차로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이 제도가 실시된 직후 만난 국내 최대 로펌의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가 “앞으로 투잡족이 급증하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산업재해가 상당히 늘 것”이라고 해 놀란 적이 있다. 법정근로시간이 줄면 장시간 근로에 따른 산업재해가 줄어들 것이라던 정부 예측과는 정반대 분석이었다.

▷불길한 예측은 들어맞기 쉬운 모양인지 실제 두 개 이상 일자리를 가진 투잡족이 크게 늘었다. 건강보험 가입자 가운데 중복 직장가입자가 2015년 8월 15만3501명에서 올 8월엔 25만5355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2018년에서 2019년 사이에는 20%나 증가했다. 이 숫자는 그나마 월 6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들이 가입하는 건강보험 대상자 통계다. 대리기사, 편의점 아르바이트처럼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투잡족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투잡 희망자는 62만9000명이었다.

▷투잡족은 원래 본업 외에 재능을 살리고 약간의 돈도 버는 ‘취미형’으로 여겨졌지만 요즘 급증하는 투잡족은 주로 ‘생계형’이다. 주 52시간제로 줄어든 수입을 벌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투잡족에 합류하는 것이다. 올 5월 경기도 버스기사들은 시간외수당이 없어지면서 월 100만 원 이상 수입이 줄어들 위기에 처하자 파업을 선언했다. 결국 버스요금을 올려 시민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파업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낮에는 버스를 몰고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뛰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출산 양육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이른바 경력단절여성이 가장의 수입이 줄자 분유비, 학원비라도 벌기 위해 다시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과로도 위험하고, 손에 익지 않은 일을 새로 하게 되면 산재 사고가 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일본도 최근 3년간 투잡족이 200만 명이나 늘어 작년 말 7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과는 달리 일손 부족이 원인이다. 일본 정부는 표준취업규칙을 바꿔 투잡족을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공무원의 복수 직장을 허용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2개의 직장을 동시에 갖는 게 원칙적으로는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근로계약서나 사규를 통해 겸업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거나 사전에 엄격한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직업 한 개로 생활할 수 있다면 큰 행운으로 여겨야 하는 세상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주 52시간제#투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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