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디젤 퇴출, 마녀사냥은 아닐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미국에서 처음 집을 살 때 계약서에 ‘계약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에 사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를 미국에서는 ‘Good Faith’라고 표현을 하는데, 진정 내지는 선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계약을 했으면 무조건 지켜야지 선의 따위를 왜 따지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계약을 하고 이행하는 과정을 보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20% 정도의 선금만 내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집 계약 당시에는 가승인 상태에서 계약이 이루어지고, 약 45일의 계약 이행 기간 동안 은행과 융자 계약을 맺어야 한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집의 내부 상태, 배관이나 구조의 안정성 등을 점검받는데 오래된 집은 하자가 많이 발생하고, 이를 어느 정도 선에서 누가 비용을 내서 고치느냐를 협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진정하게 계약의 수행을 위해 노력하다가 계약이 파기되더라도 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 미국의 계약에 관련한 법률에도 19세기 중반부터 ‘Good Faith’의 개념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진정성’의 문화는 미국의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공적인 업무나 연구를 수행하다 뜻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진정 최선을 다해 연구를 수행했다면 이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넘어가는 가는 일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많은 연구자들이 좀 더 도전적인 연구를 제안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사회, 경제, 외교, 그리고 자연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힌 환경 문제, 특히 대기오염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이러한 진정성을 해결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1921년 토머스 미즐리 주니어 박사는 GM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자동차 엔진 운영의 가장 큰 문제였던 노킹(내연기관의 실린더에서 소리가 나는 현상)을 해결하는 혁신적인 엔진 첨가제를 발명했다. 유기 납 첨가제를 넣어 엔진 노킹을 완전히 제거해 준 것으로 확인돼 그에게 미국 화학회의 니컬스 메달의 영예를 안겨준 제품이었다.

하지만 대량 제조 공정상에서 공장 노동자들이 계속해 납중독으로 죽어가는 상황이 발생해 안전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즐리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납 첨가제가 안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1924년 기자회견 석상에서 납 첨가제를 손바닥에 붓고 자신의 코로 가져가 1분간 흡입하는 퍼포먼스까지 보였다. 이후 근 1년 동안 납중독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이 사실을 끝까지 비밀로 했다. 엔진 노킹 문제는 첨가제를 더하는 방법이 아닌 연료의 옥탄가(휘발유가 연소할 때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를 높이는 방법으로 해결 가능했지만 수많은 납중독 희생자를 남긴 채 1980년대 이후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납을 첨가한 유연휘발유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판매가 금지된다.

미즐리 박사가 자신의 발명품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 부작용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노킹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교훈 삼아 우리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나 집단이 문제 파악 직후 잘못을 인정했을 때 사회적 관용을 베풀어 같이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특정 개인이나 조직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분위기는 자칫 초기에 잡을 수 있는 실수를 감추고 계속 상황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2000년대까지 ‘클린 디젤’로 불리며 높은 연료소비효율로 사랑받고, 국가적인 장려를 받았던 경유차는 요즘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누구의 잘못인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측면에서 디젤차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미세먼지 문제는 큰 걱정이 아니었다. 따라서 진정성 면에서 봤을 때 당시의 디젤차 권장 정책은 트집 잡을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을 일이지 마녀사냥을 할 일은 아니다. 아울러 지금 우리가 미세먼지 대책이라고 쏟아붓는 많은 아이디어도 전문가들의 사실만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토론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거쳐야만 그 진정성이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대기오염#경유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