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올해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세 둔화… 고령자-보행자 피해 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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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24·끝> 내년이 ‘교통안전 골든타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사람들이 교통섬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도 차들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풍경이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가 힘든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사람들이 교통섬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도 차들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풍경이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가 힘든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올해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세가 급격히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1∼11월 교통사고 사망자는 380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9명 줄어드는 데 그친 것이다. 지난해 1∼11월 교통사고 사망자는 3884명으로 2015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337명이나 줄었다. 1년 만에 감소 폭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고령자 피해가 가장 두드러졌다. 지난해보다 44명이나 급증했다. 탄핵과 대선 등 대형 이슈 탓에 상대적으로 교통안전 정책이나 안전의식 확대에 관심이 줄었던 영향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내년에도 나타나면 교통 선진국 진입이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2018년을 교통안전의 ‘골든타임’으로 꼽는 이유다.

○ 교통약자 안전 ‘빨간 불’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가 100명 이하로 급감한 건 이례적인 걸 넘어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고령자뿐 아니라 어린이 등 교통 약자의 피해가 크다는 건 그만큼 예방에 취약한 국내 교통안전 수준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

올해 1∼11월 만 65세 이상 고령자 805명이 보행 중 차에 치여 사망했다. 전체 보행 사망자 중 약 54%가 고령자다.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도 89명 급증했다. 사업용 차량의 경우 전체 사망자는 지난해보다 22명 줄었지만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6명 늘었다.

어린이의 경우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4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명 감소했다. 하지만 보행 사망자는 31명으로 1명밖에 줄지 않았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사망도 7명으로 지난해와 같았다. 그마나 음주운전과 이륜차 사고 피해를 줄인 덕분에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음주운전과 자전거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12명, 46명 줄었다.

월별로는 1월에 17명, 5월에 19명이 오히려 늘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사고제로화연구단장은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 지난해 말부터 혼란스러웠던 국내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경찰 등 교통안전과 직결된 행정력이 집회와 시위 등에 분산된 탓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日, 고령자 면허관리 효과

교통사고 피해 감소는 정부의 안전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최기주 대한교통학회장은 “안전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강하게 끌고 가지 않으면 절대로 성과를 이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단적인 예가 일본이다. 올해 일본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3609명(25일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0명 줄었다. 1948년 교통사고 통계 발표 이래 가장 적다.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인 고령자 대책 등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일본은 고령 운전자 대책에 알츠하이머병 등 고령자 질병에 따른 대비까지 마련돼 있다. 70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갱신 주기를 단축시키고 인지능력 검사를 의무화했다. 일본 정부는 1988년 도입한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반납제도의 효과가 저조하자 대중교통 무료 승차와 상품권 등 인센티브와 함께 일부 지역의 경우 강제적인 면허취소 정책까지 폈다.

일본은 ‘자동 브레이크’를 장착한 승용차도 도입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지난해 출고된 신차의 66.2%가 이 장치를 달았다. 일본 정부는 총리 직속의 교통안전 정책 컨트롤타워인 중앙교통안전대책회의 중심으로 2020년까지 자동 브레이크 신차 탑재율을 90%까지 높이고 연간 사망자 수를 2500명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다.

○ 교통안전법 지지부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올 9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교통안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올해 말 새 정부 교통안전 정책의 틀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년 1월 말로 미뤄졌다. TF가 다룬 의제에는 정부 내 교통안전을 전담하는 컨트롤타워 설치 여부와 교통안전 특별회계도 포함됐다. 교통안전 특별회계는 교통 범칙금과 과태료를 교통안전 시설 개선을 위해서만 쓸 수 있도록 별도 회계로 묶는 정책이다. 하지만 컨트롤타워 설치는 국무조정실과 청와대 어디에서도 주도적으로 맡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아 답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회계 신설은 기획재정부가 반대하고 있다.

교통안전 제도 개선도 지지부진하다. 전 좌석 안전띠 의무화는 운수업계 반대에 막혀 올해도 통과되지 못했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혈중 알코올 농도 0.03%로 강화하고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주기를 단축하는 개정안도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면도로 중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곳을 생활도로구역(30구역·제한속도 시속 30km)으로 지정하는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교통 약자의 사고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의 강력한 안전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자칫하면 교통안전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성택 neone@donga.com·서형석 기자 /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교통사고#사망자#안전#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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