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서울 거리의 시계탑

  • 입력 2003년 10월 2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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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낮 12시 정각, 서울시청 앞 덕수궁 대한문. 건너편 시청사 정면에 걸려있는 대형 시계에서 보신각 종소리가 12차례 울려 펴졌다. 이 시계는 서울시가 시청사의 디지털 전광판 시계를 철거한 뒤 최근 새로 설치한 것이다.

덕수궁에 나들이 온 한 중년남성은 “12월 31일 밤에만 듣던 보신각 종소리를 매일 듣게 돼 기분이 좋다”면서 귀를 기울였다. 젊은 연인들은 잠시 멈춰 종소리를 들으며 시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속 장소로 애용되어온 시계탑은 추억과 낭만의 대상이다.

세계 유명 도시엔 그곳을 대표하는 시계탑이 있다. 96m 높이의 장중함을 자랑하는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의 빅벤(Big Ben), 낮 12시 또는 매시 정각에 종소리에 맞추어 인형이 춤을 추는 독일 뮌헨의 시청사 시계탑이나 체코 프라하의 천문시계탑, 시계탑의 도시로 유명한 일본 삿포로의 다양하고 정겨운 시계탑들….

모두 세계의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서울의 거리 공원 학교 곳곳에서도 시계탑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있는 옛 대한의원 본관 시계탑. 1908년 대한제국이 건립한 바로크 양식의 이 시계탑은 고풍스러운 품격을 자랑한다.

서울에서 가장 이색적인 시계탑은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 정문의 춤추는 인형시계. 시계 바로 아래 유리상자에 세계 30여개국 전통의상 차림의 인형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매시 정각이 되면 유리문을 열고 나와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문과대 건물에 있는 시계탑도 신선하다.

23일 낮 12시, 시계탑에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시계탑 아래 모여 있던 학생들은 “점심시간이다. 밥 먹으러 가자”라며 삼삼오오 식당으로 향했다.

왜 하필 ‘새야 새야 파랑새야’일까. 학생들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뜨거운 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이라면서 “정오에 이 음악소리를 듣지 못하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대체로 서울시내 시계탑은 천편일률적이고 조형미가 떨어지는 것이 많다. 서울역 청량리역 시계탑이 대표적이다. 철제기둥 몇 개 세워놓고 그 위에 시계를 올려놓은 것에 불과하다. 아름다움이나 낭만은 찾을 수 없다.

보신각 종소리를 내는 시청 시계가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질주하는 차량 소음 때문에 건너편 대한문이나 소공동 쪽에서 종소리를 듣는 데 방해가 되지만 내년 시청광장이 조성되면 차량통행이 줄어 소음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전망이다.

서울시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시청광장에 모여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보신각 종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매시 정각에 음악에 맞춰 인형이 춤을 추는 롯데월드 시계탑(위), 고풍스러움을 자랑하는 서울대병원 시계탑(아래 왼쪽), 별다른 특징이 없고 조형미도 떨어지는 서울역 시계탑. -전영한기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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