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면 관운장 대인(大人)님의 기(氣)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의의 상징인 관운장님의 정신적 에너지를 받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라도 빠지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예요.”
동묘 외에도 서울 곳곳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중구 장충동 2가의 관성묘(關聖廟), 장충동 1가의 성제묘(聖帝廟), 중구 방산동의 성제묘, 동작구 사당동의 남묘(남관왕묘) 등.
삼국지 영웅 가운데 제갈공명을 기리는 사당이 중구 예장동과 용산구 보광동에 있지만 조조 유비 장비를 기리는 사당은 없다.
유독 관우를 숭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관우는 삼국지 최고의 무장으로 꼽히는데다 남다른 충성심과 신의로 이름이 높은 인물. 세상을 떠난 뒤 관왕(關王)으로 불렸고 나아가 관성대제(關聖大帝), 즉 성스러운 황제로까지 추앙받았다. 특히 중국 도교에서는 관우를 신성불가침의 신으로 추앙해오고 있다. 화교가 많은 동남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관우 숭배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과 명나라 군대는 관우의 신령이 도움을 줌으로써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관우가 군신(軍神)이 되어 조선을 지켜냈다는 믿음이었다.
조선 조정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1601년 동묘를 세웠다. 그때부터 조선 말까지 서울 곳곳에 관우 사당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관우는 토속신앙과 맞물려 재물을 풍성하게 해주는 재신(財神)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국운이 쇠퇴해가던 1885년 고종은 종로구 혜화동(지금의 서울과학고 남쪽)에 북묘(북관왕묘)를 세웠다. 이를 놓고 “관우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키려 했던 고종의 갈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묘관리사무소에 따르면 동묘를 찾는 사람은 하루 평균 1000여명. 이 가운데 바둑 장기를 두는 노인들이 가장 많지만 관우를 참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무속인, 아들을 낳고 싶어 하는 사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명한 정계 재계 인사도 온다고 한다. 김영수씨는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빌기도 하지만 돈을 벌면 청소년들이 관운장님의 기상과 용기를 배울 수 있도록 충효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인들 여기 와서 관운장의 신의를 배워야 한다”는 한 노인의 말처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조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유비를 섬겼던 관우의 신의를 최고 매력으로 꼽았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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