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의 날飛]비좁은 비행기 이코노미석의 비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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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이코노미 좌석 넓어질까.

비행기 여행은 설레지만 비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몇 시간씩 날아가는 경험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몸 한 번 뒤척이기도 쉽지 않고, 통로석에 앉지 않았다면 화장실 한 번 가기 위해 곤히 자는 옆 사람을 깨워야 하는 경험 한 번쯤은 해봤을 텐데요. 전 세계 많은 항공사들이 같은 비행기에 조금 더 많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좌석 간격을 좁혀 왔습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평균 35인치(약 89cm)이던 이코노미석 앞뒤 간격이 현재는 약 31인치(약 79cm)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좌석의 좌우 폭은 18인치(약 46cm)에서 16.5인치(약 42cm)로 좁아졌습니다.
지난해 매출 기준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의 이코노미 좌석.자료 : 아메리칸항공 홈페이지
지난해 매출 기준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의 이코노미 좌석.
자료 : 아메리칸항공 홈페이지


중형차인 소나타와 준중형차인 아반떼의 2017년형 축간 거리(앞바퀴와 뒷바퀴의 중심 사이 거리·실내공간 비교의 척도) 차이가 불과 10cm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이코노미석 공간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대략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현대자동차 중형차인 소나타와 준중형차 아반떼의 크기 비교.자료 :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현대자동차 중형차인 소나타와 준중형차 아반떼의 크기 비교.
자료 :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이윤을 중시하던 항공사의 이런 행태에 제동이 걸릴 전망입니다. 미국 콜롬비아특별구 연방항소법원이 지난달 말 경 미 연방 항공청(FAA)에 이코노미석 좌석 간격에 대한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라고 결정했기 때문이죠. 연방항소법원은 우리의 고등법원에 해당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이 1년에 처리하는 민원 건수가 매우 적은 점을 감안해 미국에서는 매우 중한 일이 아닐 경우 항소법원 결정을 사실상 최종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료 : flyersright.org
자료 : flyersright.org


연방 법원은 미국의 항공 관련 비영리 단체인 ‘플라이어스 라이트(Flyers Rights)’가 낸 청원을 수용했습니다. 이코노미 좌석이 끝을 모르고 좁아지는 걸 막아달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 단체만 이 같은 주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의회 의원인 스티브 코헨 역시 동료 의원들과 함께 FAA가 좌석 간격 기준을 마련하고 항공사들은 좌석 규격을 공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올해 3월 발의했습니다.

시민단체와 국회의 주장을 미국 법원이 수용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전’입니다. 체형은 커졌는데 좌석은 오히려 작아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경우 안전하게 탈출하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을 받아들였죠. 미국 질병관리본부 통계를 보면 1971년 대비 2002년 미국 성인 키는 남자가 0.5인치, 여자가 0.4인치 커졌습니다. 몸무게는 남자가 8kg, 여자가 9kg 증가했네요.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커진 몸뿐만 아니라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 불리는 앉은 자세 부동 혈전색전증(다리 혈관 속 피가 응고돼 통증이 생기거나 혈관이 손상되는 질병)이 생기기 쉽다는 건강 이슈도 눈여겨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동아일보 2004년 11월 22일 기사.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동아일보 2004년 11월 22일 기사.


도화선도 있었습니다. 올해 4월 유나이티드항공이 아시아인 의사를 폭행하고 억지로 끌어내는 등 미국 항공사들이 잇따른 ‘막장 행보’를 보인 점도 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베트남계 미국인을 비행기에서 짐짝처럼 끌어내고 있는 유나이티드항공 관계자.자료 : 유튜브 영상 캡처·동아일보 DB
베트남계 미국인을 비행기에서 짐짝처럼 끌어내고 있는 유나이티드항공 관계자.
자료 : 유튜브 영상 캡처·동아일보 DB


FAA는 미국의 항공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미국 내 정부 기관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항공 산업이 워낙 규모가 크고 국제적 영향력이 세다보니 FAA의 결정은 사실상 전 세계 항공업계의 ‘표준’이 되는 경우가 많죠. ‘삼성 갤럭시노트7 사용 규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FAA는 지난해 9월 기내에서 휴대전화에 불이 붙는 사고를 막기 위해 △갤럭시노트7을 기내에서 충전하거나 전원을 켜고 사용하지 말고 △수하물로 이 휴대전화를 부쳐서는 안 된다는 임시 규제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 규제는 미국에 취항하지 않는 우리나라 항공사 노선에도 적용됐죠. FAA가 “미국에 입항하는 모든 비행기는 FAA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을 붙일 경우 피해갈 수 있는 항공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갤럭시노트7 휴대전화를 기내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한 미연방항공청(FAA)의 발표자료 : 미연방항공청 홈페이지
갤럭시노트7 휴대전화를 기내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한 미연방항공청(FAA)의 발표
자료 : 미연방항공청 홈페이지


그럼 우리나라 항공사는 이코노미석 간격을 얼마나 넓게 만들어 두었을까요. 양대 풀서비스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33인치 안팎으로 미국보다 넓게 좌석을 만들어 뒀습니다. 항공여행이 고급 여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보니 국적기는 미국에 비해 좌석도 좀 더 넓고 서비스도 훌륭합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저가항공사들은 31~32인치가 많습니다. 양대 항공사에 비해 다소 좁네요. 다만 좌우 폭은 대부분 항공사가 19인치 전후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같은 항공사라도 비행기 기종에 따라 다르고, 같은 기종이라도 좌석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아시아나항공이 A350 항공기에 도입한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이코노미 스마티움’ 홍보 이미지(위)와 진에어의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지니 플러스 시트’ 소개 자료.자료 : 각 항공사 홈페이지
아시아나항공이 A350 항공기에 도입한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이코노미 스마티움’ 홍보 이미지(위)와 진에어의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지니 플러스 시트’ 소개 자료.
자료 : 각 항공사 홈페이지


최근에는 외국 항공사에서 운영하던 ‘프리미엄 이코노미’ 서비스도 국내에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도입한 신기종 A350에 ‘이코노미 스마티움’이라는 좌석을 도입했습니다. 일반 이코노미석보다 7~10cm 공간을 넓혀 조금 더 편한 여행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국내 저가항공사로는 유일하게 대형기인 보잉 777기를 가지고 있는 진에어도 이에 앞서 큰 덩치를 이용해 앞쪽 공간에 ‘지니 플러스 시트’라고 불리는 좌석을 팔고 있습니다. 좌우 폭은 그대로지만 앞뒤 간격이 최대 37인치(약 94cm)까지 넓어진 좌석입니다. 다만 개인별로 최대 15만 원은 더 내야 합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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