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17>하루하루 ‘고난의 행군’…돌아보면 돌아가고픈 추억이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3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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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격적인 ‘포(four)에버 육아’가 시작됐다.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한 자녀(막내) 엄마’로서 누렸던 호사(?!)는 이제 안녕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은 설렘 반, 우려 반이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귀가한 아이들 반응이 어떨지 걱정됐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새 식구를 ‘격하게’ 환영했다. 오래간만에 본 엄마보다도 새로 온 아가가 더 반가운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3명 모두 첫날부터 아기 곁을 떠날 줄 몰랐다. 아가를 둘러싸고 앉아 “귀여워”를 연발했고, “엄마 수유하게 잠깐들 나가 있어”하면 우르르 나갔다가 아가가 “엥”하는 소리라도 내면 언제 들었는지 또 우르르 달려왔다. 혹시 엄마가 아가에게만 관심을 가진다고 질투하지 않을까, 새로운 동생에게 무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문제는 큰 애들이 아니라 나였다.

셋째 출산 때까지는 조리원 퇴소 후 곧바로 남의 도움 없이 육아는 물론 가사까지 도맡아 해도 아무 문제없이 거뜬했다. 6년 전 SNS를 보면 갓난아기인 첫째를 슬링(갓난아기를 안을 때 쓰는 침낭형 아기띠)에 넣어 두르고 요리며 설거지를 했다는 일기가 남아있을 정도다.

그땐 그렇게 해도 크게 힘든 줄 몰랐는데, 웬 걸. 이번엔 돌아온 날 몇 시간 아기용품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좀 했다고 당장 저녁부터 삭신이 쑤시기 시작했다. 다음 날부터 부른 산후도우미가 아니었다면 아기 뒤치다꺼리는 물론 내 밥 한 그릇 챙겨먹기조차 어려울 뻔했다. 허리가 아파 거동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자녀 가정의 경우 시·구(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 중복지원이 가능하다고 해서 처음으로 산후도우미를 신청했는데, 이후 며칠간 도우미 분께 아기를 맡기고 한의원을 다녀야 했다.

자연히 큰 애들 돌볼 손이 모자라 본의 아니게 큰 소리가 늘었다. 안방에서 막내에게 수유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무언가 떨어지거나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 당장 달려갈 수 없으니 목소리만 커졌다. “뭐한 거야! 누구야! 너희들 엄마한테 혼난다!!” 아이들이 재깍 말을 듣지 않을 때도 피곤하고 급한 마음에 자꾸 호통을 치게 됐다. 남편도 산후도우미도 없는 토요일, 배고프다는 막내를 안고 세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면서 또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첫 주말이 지나기도 전에 결국 목이 쉬고 말았다.

이런 ‘고난의 행군’은 생후 한 달도 안 된 막내가 감기에 걸리면서 정점을 찍었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지 일주일여가 지난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가 몸이 전에 없이 따끈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체온계를 대어 보니 체온이 37도를 넘었다. 열이 나는 것이다.

신생아는, 특히 모유를 먹는 신생아는 웬만해서는 잘 안 아프다. 엄마에게서 태생적으로 물려받는 면역력이 있는 데다 모유도 그런 역할을 하는 성분을 일부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신생아는 어딜 나가거나 외부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감염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래서 앞선 세 아이도 신생아 때는 모두 건강했는데 이게 웬 일인가.

아무래도 막내의 경우 태어나자마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게 화근인 듯싶었다. 다름 아니라 어린이집에서 온갖 병균을 안고 귀가하는 제 누나들이다. 신생아 옆에서 잠깐씩 들여다보는 게 전부인데 설마 뭔가 옮으랴, 방심했던 게 탈이었다.

신생아는 열이 올라도 함부로 해열제를 쓸 수 없다. 그렇다고 고열도 아닌데 괜히 병원을 간다고 나섰다가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결국 나와 한의사인 남편은 일단 하루 이틀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기의 체온은 37도 1~9부를 오가는 미열 상태였다. 미온수 마사지를 하면 37도 1, 2부로 떨어졌다가 젖을 먹으면 그 열로 7~9부까지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됐다. 수시로 미온수로 마사지를 하고, 칭얼대면 안아주고, 열이 오르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이렇게 지내기를 며칠, 내 몸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기가 잘 먹지 않아 모유가 꽉 차면서 가슴 통증이 시작됐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 얼굴은 전에 없이 퀭해졌다. 하루는 귀가한 남편이 내 머리 냄새를 맡더니 “오늘 머리 안 감았어?”하고 물었다. 오늘은 무슨, 사흘째 머리를 감지 못한 상황. “내가 머리 감을 정신이 어디 있어? 머리 감기는커녕 세수하는 것도 까먹었구만.” 그렇게 말하곤 새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불과 한 달 전까지 회사 다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구질구질했다.

‘그래도 첫 한 달 치고 잘 버텼잖아.’ 거울에 비친 나를 애써 위로했다. 그래, 그러고 보면 정말 한 달이 훌쩍 가지 않았나. 갓 출산했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 할 15개월이란 기간이 마냥 긴 시간인 것 같았는데, 벌써 그 중 한 달이 훌렁 사라져버렸다. 아프고, 소리 지르면서 어영부영하다가.

아가를 둘러싸고 앉은 큰애들.
아가를 둘러싸고 앉은 큰애들.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14개월도 긴 시간이 아니었다. 출산 전에는 기왕에 주어진 15개월의 육아 시간을 정말 알차게 쓰고 복귀하자고 다짐했었는데.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너무 헛되이 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켜고 미술놀이 주문 사이트에 들어갔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어디 나갈 수는 없으니, 큰 애들이 집에서 갖고 놀 수 있도록 점토나 만들기 도구라도 주문할까 해서다. 요 몇 주간 애들은 막내 아가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주말마다 방콕(방에서 콕 박혀 지내다) 생활을 해야 했다. 이번 주말에는 큰 애들에게 “뛰지 말아라” 하는 잔소리 대신 새로운 점토 장난감이라도 선물해야겠다. 아이들 작품마다 ‘특급칭찬’도 날려줘야지. 지금은 하루하루가 고생스러워도 나중에 복직해서 돌아보면 그 모든 나날이 얼마나 돌아가고픈 추억이겠나.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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