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매매 온상 된 ‘랜덤채팅 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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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범죄창구 전락한 랜덤채팅 앱]

《 청소년 성매매 등의 온상지로 알려져 있는 스마트폰 ‘랜덤 채팅 앱’(불특정 다수와 무작위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적절한 근절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 강력 범죄의 창구로 악용되고 있지만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본인 확인 강화, 청소년유해매체 지정, 등록제 운영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청소년들이 성매매나 범죄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이에 필요한 방안들을 살펴봤다. 》

 

‘ㅈㄱ<조건만남>’ 등 성매매 암시글 넘치는데, 정부는 “사적 대화” 방치
 
 #사례 1. 미성년자 A 양이 김모 씨(25)를 처음 알게 된 건 올해 3월 스마트폰 랜덤채팅 앱(불특정 다수와 무작위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익명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화라는 점이 A 양에게 경계심을 풀게 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손과 발 사진을 교환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체 사진까지 보내는 실수를 하게 됐다. 이 때문에 A 양은 협박을 받다가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사례 2. 지난해 9월 성매매 알선 업주 김모 씨(30)가 스마트폰 랜덤채팅 앱에 ‘한 달에 500만 원 벌 수 있게 해 줄게∼’라는 글을 올리자 몇 분도 안 돼 답신이 왔다. 돈이 궁했던 미성년자 이모 군(16)과 김모 양(15)이었다. 처음에는 성매매 관련 일인 줄 몰랐던 이들은 김 씨의 꼬드김에 넘어가 주위 청소년들을 끌어모아 성매매를 주선하는 ‘중간 포주’로 일했다. 김 씨는 이 군의 지인인 중학생 A 양(14) 등 가출 청소년 3명을 데리고 광주, 목포 일대를 돌며 100회가량 성매매를 알선했다. 성매수 남성들은 모두 랜덤채팅 앱을 통해 모집했다.

 랜덤채팅 앱의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랜덤채팅 앱에서 청소년들은 성폭행 등의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심지어 랜덤채팅 앱 때문에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전히 근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유와 가능한 대안을 짚어봤다.

○ 범죄의 사각지대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정보 유통 앱에 대한 시정요구 현황’에 따르면 방심위의 성매매·음란 앱 시정요구는 1분기(1∼3월) 136건에서 2분기(4∼6월)에는 358건으로 크게 늘었다. 경찰청이 올해 2월 22일∼5월 31일 100일 동안 집중 단속한 결과에서도 랜덤채팅 앱을 통한 성매매 건수는 총 1972건, 검거된 사람은 8502명에 달했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강제로 조건만남을 시키는 ‘사이버 포주’까지 생겨날 정도로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청소년들에게 랜덤채팅 앱의 인기는 여전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월 발표한 ‘스마트시대 대중매체를 통한 청소년의 성 상품화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국 중고교생 4189명 중 14.2%(594명)가 스마트폰에서 주로 이용하는 프로그램으로 ‘랜덤채팅’을 꼽았다.

 실제로 랜덤채팅 앱에 가입해 자신을 여성 청소년으로 설정해 놓으면 가입하자마자 조건만남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은 4월 ‘성매매 방지·피해자 보호 및 지원·성매매 사범 단속·수사 강화를 위한 2016년도 추진계획’을 내놓으며 랜덤채팅 앱의 부작용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청소년들이 범죄에 노출돼 있는 환경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랜덤채팅 앱 ‘사후 심의’ 무용지물

 랜덤채팅 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방심위는 랜덤채팅 앱 사후 심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를 연상시키는 단어만으로는 게시자에 대한 제재는커녕 게시글 삭제조차도 힘들다. 정혜정 방심위 유해정보팀장은 “사후 심의도 성기 노출 사진이나 성매수를 직접 언급하는 글 등이 아니면 삭제 요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구글, 애플 등 앱 마켓을 운영하는 글로벌 사업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불법 앱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고 있다. 해당 사업자들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앱 장터에서 랜덤채팅 앱을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정부가 랜덤채팅 앱의 부작용을 뿌리 뽑을 수 없는 이유는 타인의 사적인 대화 내용을 감청해 사전 심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 심의를 하려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 최소한의 개인정보 입력하게 해야

 범죄자들이 랜덤채팅 앱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불법 게시물을 올려 문제가 되는 만큼 앱 가입 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입력토록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랜덤채팅 앱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는 ‘아만다’ ‘정오의데이트’ 등과 같은 앱들은 가입 시 사진 등 본인 프로필을 작성해야 한다. 관리자는 기재 내용이 사실인지, 이상한 사진은 없는지 확인한 뒤 가입을 허용한다.

 랜덤채팅 앱 자체를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성인채팅 사이트들과 마찬가지로 주민등록번호 입력 등 성인인증을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성년자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고 최소한 청소년들이 성매매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김동복 남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랜덤채팅 앱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인증 과정을 만들고, 강력 범죄로 이어지면 앱 폐쇄와 같은 제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등록제 등 적절한 대안 찾아야

 랜덤채팅 앱을 등록제로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과거 개인 간 거래(P2P) 공유 사이트에서 사용자들이 불법적으로 영화, 드라마, 음란물 등을 올리거나 내려받아 논란이 되자 정부는 2012년 5월 해당 사업자들을 전기통신사업법상 특수한 형태의 부가통신사업자인 웹하드 사업자로 등록하게끔 했다.

 김정태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활용지원팀장은 “등록제를 통해 웹하드 사업자들이 양지로 나오자 음란물 공유가 줄어드는 등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난 바 있다”며 “랜덤채팅 앱의 부작용이 끊임없이 지적되는 만큼 등록제로 운영할 수 있는지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진 방통위 인터넷윤리팀장은 “채팅방이 사적 공간이라는 점과 앱 속성상 빠르게 출몰했다 사라지는 랜덤채팅 앱의 특성 탓에 정책 마련에 어려움이 많다”며 “랜덤채팅 앱상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신무경 fighter@donga.com·최지연 기자
#범죄#랜덤채팅#앱#정부#성매매#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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