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제 136차례 수정… “자격-가점 헷갈려” 당첨뒤 취소 속출

송진흡기자 , 천호성기자 입력 2018-03-31 03:00수정 2018-03-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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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40년 누더기 주택청약제도

회사원 박모 씨(41·여)는 주택청약통장을 써서 아파트를 사는 꿈을 접었다.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등에 가점이 있는 현행 청약제도로는 원하는 아파트에 당첨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골드미스인 박 씨는 2001년 입사와 함께 청약통장을 만들었다. 실제 무주택 기간은 16년이지만 결혼을 하지 않아 30세부터 무주택 기간이 계산됐다. 그래서 그 기간은 11년. 청약 가점이 24점에 불과하다.

부모님과 따로 살기에 부양가족에 따른 가점도 5점밖에 받지 못한다. 다만 통장 가입 기간 17년에 따른 가점은 17점을 모두 받는다. 결국 박 씨가 받을 수 있는 가점은 46점이다. 통상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려면 60점은 넘어야 하는 만큼 현재로서는 미달되는 비(非)인기 지역 아파트 외에는 청약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박 씨는 “기존 아파트를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오랜 기간 청약통장에 돈을 넣은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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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주택청약제도가 ‘주택의 신속한 공급 확대와 한정된 주택자원의 합리적 배분’이라는 당초 제도 도입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등 국내 인구 구조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주택 실수요층이 청약 과정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최근 ‘로또 청약 열풍’이 불었던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 개포’(개포 주공8단지 재건축) 청약 과정에서 만 19세 당첨자가 나오면서 현행 청약제도가 실수요층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게다가 정부가 청약제도를 경기 조절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땜질식 처방’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시장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복잡해진 규정을 악용해 ‘떴다방’ 등 이른바 ‘선수’들이 편법으로 분양받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도 이런 비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주택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청약제도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 시장 환경 변화 반영 못해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 주택보급률은 102.6%.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98.2%이지만 지방은 106.8%나 된다. 과거 산업화 시대처럼 주택이 턱없이 부족해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인구 구조도 많이 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넘는 27.2%. 15년 전인 2000년(15.6%)과 비교하면 11.6%포인트 늘었다. 통계청은 1인 가구 비중이 갈수록 늘어 2020년(30.1%)에 30%를 넘어선 뒤 2045년엔 36.3%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택 공급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8.5%. 2005년(88.5%)과 비교하면 20%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이 기간 연립주택은 0.56%에서 3.1%, 다세대주택은 4.49%에서 15.9%로 각각 증가했다. 결혼이 줄어들면서 늘어난 1인 가구주들이 아파트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으로 들어간 결과인 것으로 분석된다. 은퇴한 사람들이 귀촌이나 귀농을 하는 사례가 늘면서 단독주택 비중도 이 기간 6.4%에서 12.4%로 급증했다. 4인 기준 가구를 대상으로 아파트를 대량 공급했던 시절에 나왔던 청약제도로는 더 이상 효율적인 주택자원 배분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 편법을 부추기기도

정부는 지난해 8월 내놓은 ‘8·2부동산대책’을 통해 청약가점제를 강화했다. 투기과열지구 내 전용면적 85m² 이하 아파트는 100% 가점제로만 당첨자를 뽑는다는 게 핵심.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해준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에 청년층과 신혼부부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나이와 자녀 수가 큰 영향을 미치는 가점제는 젊은 세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제도여서다.

다시 정부는 지난해 11월 신혼부부 특별 공급 물량을 공공분양주택 15%→30%, 민영주택 10%→20%로 각각 늘리기로 했다. 이 방안은 이르면 다음 달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특별공급제도는 미성년자나 20대 사회 초년병이 당첨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금수저 청약’이라는 비난만 사고 있다. 실제로 ‘디에이치자이 개포’나 ‘과천 위버필드’ 청약 과정에서 20대 이하들이 특별 공급 물량을 받았다.

문제는 특별 공급 대상자 가운데 고가의 아파트를 살 경제력이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층이 많다는 것이다. 최소 분양가만 10억 원(3.3m²당 평균 4160만 원)이 넘는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중도금 대출도 불가능하다. 젊은층이 자기 소득으로는 분양 대금을 낼 수 없는 만큼 부모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국세청이 ‘금수저 청약’ 논란이 불거진 아파트 특별 공급 당첨자를 대상으로 증여세 탈루 여부를 조사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본인이 조달한 자금을 빼고 부모로부터 받은 돈에 대해서 증여세를 내면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 실수요층이 당첨될 기회가 줄어드는 대신 편법 증여 수단은 늘어난 셈이다.

○ 누더기 개선에 시장만 혼란

국토부에 따르면 청약제도는 1960년대(관련 규정·공영주택법)와 1970년대(주택건설촉진법+국민주택 우선 공급에 관한 규칙)에도 운영됐다. 하지만 공공주택에만 적용됐다. 공공과 민간아파트까지 모두 아우르는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따라서 현행 청약제도의 출발점은 1978년 5월 10일 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으로 봐야 한다.

이후 정부는 시장 환경 변화를 반영하거나 주택경기 조절을 목적으로 수시로 세부 규정을 바꿨다. 그 결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경우 1978년 이후 올해 3월까지 136차례에 걸쳐 일부 또는 전면 개정이 이뤄졌고 국토부 관계자들조차 사석에서 “헷갈린다”고 토로할 수준으로 복잡해졌다.

특히 2007년 도입된 청약가점제도는 적용 대상 아파트나 통장, 가점 기준이 복잡하고 모호해 실수요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청약을 하는 사이트인 ‘아파트투유’(www.apt2you.com)에서 청약 신청을 하다가 청약자격이나 가점 항목을 잘못 입력해 당첨이 취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청약 부적격 건수는 2만1800건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공급된 아파트의 9%에 달하는 수치다. 일부 아파트는 모집 가구 수의 20% 이상이 부적격 처리됐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동산 업자는 당첨 취소 물량을 분양받아 비싼 값에 되파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자동화된 연말정산 시스템처럼 본인을 인증하면 무주택 기간이나 가족사항 등의 조건이 자동으로 입력되도록 시스템이 개편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후분양제 도입 시 전면 개편 불가피

현행 청약제도의 가장 큰 위기는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후분양제 의무화’다. 후분양제는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은 후 청약을 받는 방식이어서 선분양제를 전제로 한 현행 청약제도와 상충될 가능성이 크다.

후분양제가 청약시장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국토부에 대한 국정감사 때였다.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후분양제 검토 여부를 묻는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 부문에서부터 후분양제를 도입하는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올해 1월에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 주도로 공공아파트 후분양을 의무화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공정 80%를 넘어야 분양이 가능하도록 하되 도입 초기에는 공정 60%에서 분양을 허용하기로 했다. 올해 안에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2020년에는 후분양으로 입주자를 모집하는 LH 아파트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청약을 통해 집을 장만할 유인이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분양가가 오르는 탓이다. 대다수 아파트가 ‘선분양’되는 지금은 건설사들이 공사 초기부터 계약자들의 중도금 등을 받아 공사비로 쓴다. 반면 후분양을 하면 아파트가 거의 다 지어지기 전까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은행 대출 등으로 사업비를 마련해야 한다. 대출 이자 등이 분양가에 얹힐 가능성이 있는 것. 실제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분양가가 지금보다 3.0∼7.8% 높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주택 수요자로서는 분양가를 중도금 등으로 나눠 내지 않고 한 번에 내야 한다는 점 역시 부담스럽다.

아파트 분양 자체가 지금보다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비용 상승에 따른 분양가 상승 압력과 공급 물량 급감 가능성을 고려하면 실수요자에게는 실익이 크지 않다”며 “획일적 후분양제 전환보다는 인센티브 보강 등으로 건설업체의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양시장의 매력이 줄면서 청약통장의 ‘뱅크런(대규모 인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처럼 청약 1순위 자격을 유지할 필요가 사라져 통장을 깨 기존 아파트를 사거나 생활비 등으로 쓰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경우 주택청약종합저축 예금액 등을 재원으로 하는 주택도시기금의 건전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는 정부가 청약 과열을 막기 위해 가점제 적용 비중 등을 크게 높여 놓았지만 후분양제에서는 오히려 청약저축 가입자 감소 등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분양제 도입 전에 가점 기준과 비중 등의 청약 진입장벽을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진흡 jinhup@donga.com·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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