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열린포럼 ‘할 말 있습니다’]<9>한국 여성의 도전 유리천장을 뚫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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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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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옥죄는 유리천장, 침묵하면 철벽 돼… 깨지더라도 부딪쳐라”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열린포럼’에서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멘토인 송정희 KT 부사장(오른쪽)이 자신이 걸어온 삶과 한국 여성의 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열린포럼’에서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멘토인 송정희 KT 부사장(오른쪽)이 자신이 걸어온 삶과 한국 여성의 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여성은 학교를 떠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수많은 벽에 부딪힌다. 능력이 뛰어나고 학교 성적이 우수해도 일자리를 구할 때부터 주위 남자 동기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십상이다. 어렵사리 발을 들여놓은 직장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이유 없이 여성을 깔보는 남자 상사의 시선에 주눅 들기도 하고, 때로는 인사평가나 승진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하소연할 곳조차 마땅치 않은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

아홉 번째 ‘2040 열린포럼’의 주제는 ‘한국 여성의 도전, 유리천장을 뚫어라’다.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0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열린포럼에는 송정희 KT 부사장(54)을 멘토로 정부와 기업에서 맹렬하게 정상을 향해 달리는 여성 리더 21명이 모였다. 송 부사장의 자기소개를 겸한 짧은 강연으로 시작된 토론은 2시간 가까이 뜨겁게 이어졌다.

○ “침묵은 유리천장을 철벽으로 만든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4000명가량 되는 임직원 중에 여성이 8%밖에 안 된다. 그렇다 보니 여직원들은 (남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일부 공대 여학생처럼 남자들에게 과도하게 동화되거나, 반대로 완전히 ‘예쁜 여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너는 왜 기가 그리 세나’란 핀잔을 듣게 돼 주눅이 들게 된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한 여성 참석자는 남자 선배의 ‘숲’에 둘러싸여 일하면서 느끼는 위압감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열린포럼 참석자 중 맏언니인 김인아 서울 신영초교 교장(59)은 자신의 교직생활 경험을 예로 들며 조언에 나섰다. 김 교장은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평교사 시절, 주변에서 ‘저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라며 학교의 주요 보직을 맡겨주질 않았다”며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고민 끝에 당시 학교장을 찾아가 ‘공석인 체육부장을 맡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측이 체육부장은 끝내 시켜주지 않았지만 이듬해 과학부장 자리가 비었을 때 기회를 주었다”며 “덕분에 이후 장학사와 교감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장은 “유리천장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철벽이 된다”며 “깨지면 피도 나고 아프지만 용기를 내라”고 격려했다.

남성 중심의 ‘사내(社內) 정치’ 문화에 대한 고민도 토론 주제로 올랐다. 권미정 쇼박스 배급투자팀 부장(46)은 “영화의 투자, 유통을 하다 보니 팀원 중에 남자 후배가 많고 그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라며 “하지만 사내 정치와는 담 쌓고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가끔은 내 일을 옆 부서에서 채가는 경우가 있어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 부사장은 “사내 정치를 안 하고 회사 생활을 하기는 힘들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회사를 위한 일이고, 그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력도 필요한 것”이라며 “여성도 남성 동료들처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회사 내에서 생색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남자 직원 다루는 법 배워야”

참석자 대부분이 조직생활을 하는 이들인 까닭에 남성 동료와의 관계 설정 문제도 중요한 화두였다. 한 대기업 팀장은 “여자 후배가 출산휴가를 떠난 빈자리에 남자 후배를 받고 보니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업무지시 이해도도 떨어지는 것 같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박미옥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계장(44)은 이에 대해 자신이 참여했던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수사를 예로 들며 남녀 혼성팀의 시너지를 끌어내도록 조언했다. 박 계장은 “남자 형사로만 꾸린 수사팀은 범죄현장 탐문에서 얻은 모든 정보를 남성적 시각으로 걸러서 보고하느라 중요한 단서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남자 고참과 여자 막내 식으로 성별과 연령을 엇갈려 2인 1조로 근무하도록 했더니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 효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남자 후배에게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여직원을 파트너로 붙여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 포스코 커뮤니케이션실 기획그룹팀장(44)은 “남자가 많은 조직에서는 ‘여자 상사 밑에서 어떻게 일하느냐’고 수군거리거나, 아예 여성을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조직에서는 여성이 버텨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담담하게 지내다 보면 나를 음해하던 상대방이 결국에는 나를 동료로 인정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 “유리천장 깰 네트워킹에 힘써야”

참석자들은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수지 이베이코리아 인프라서비스실장(39)은 “사내 여성 팀장 모임을 만들고, 참가자들의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했더니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끼워주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이 나오더라”고 소개했다. 송 부사장은 이에 대해 “네트워킹의 범위를 여성은 물론이고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남성까지로 넓히면 된다”고 조언했다.

정윤희 기업은행 개인여신부 상품기획팀 차장(42)은 “최근 들어 은행 본점에 여성 간부가 늘다 보니 어떤 때는 여성이 여성의 적이 되는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송 부사장은 이에 “남성들은 싸우더라도 입을 다물고 물밑에서 서로 발로 차는 반면에 여성들은 불필요하게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꼴불견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여성 경쟁자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이 밖에도 여성으로서 직장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느라 겪는 어려움과 조직 내에서 성과를 요구받으면서 생기는 스트레스 관리법, 경력관리의 어려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일부 참석자는 포럼이 끝난 뒤에도 인근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멘토

송정희 KT 서비스 이노베이션 부문장(부사장·54)

▽각계 여성 리더

강민정 롯데마트 창조혁신팀 과장(32)
김명미 ㈜모뉴엘·잘만테크 홍보팀장(37)
김수지 이베이코리아 인프라서비스실장(39)
김인아 서울 신영초교 교장(59)
김진호 현대·기아자동차 홍보기획팀 과장(32)
김희진 엔씨소프트 사회공헌팀장(39)
권미정 쇼박스 배급투자팀 부장(46)
나윤아 SK홀딩스 홍보팀 과장(35)
노혜원 국무총리실 성과관리2팀장(37)
문여정 금호아시아나 광고팀 과장(34)
박미옥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계장(44)
박초롱 KT&G 영업부 대리(25)
서인선 대검찰청 연구관(38)
안선영 GS홈쇼핑 과장(36)
원정숙 롯데면세점 김포공항점장(45)
채송화 CJ푸드빌 빕스마케팅팀장(34)
장지윤 농협중앙회 홍보실 차장(42)
장혜진 신세계백화점 홍보팀장(42)
정윤희 기업은행 개인여신부 상품기획팀 차장(42)
진희 이디엄커뮤니케이션 대표(44)
최영 포스코 커뮤니케이션실 기획그룹팀장(44)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다음 회 열린포럼의 주제는 ‘주택시장 변화하는 현실, 꼭 집을 가져야 하나’입니다.
#열린포럼#송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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