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1부/미래형 직업을 찾아서]<8·끝>美 유기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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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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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먹거리 책임지는 ‘식품 외교관’… 70대도 근무 가능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 있는 ‘센트럴 마켓’의 농산물 진열대에는 인근 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이 그득하다. 신선하고 안전한 식품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미국에서는 다양한 유기농 관련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댈러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 있는 ‘센트럴 마켓’의 농산물 진열대에는 인근 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이 그득하다. 신선하고 안전한 식품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미국에서는 다양한 유기농 관련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댈러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과일 코너에 진열된 유기농 오렌지는 누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키운 건지, 제철 유기농 재료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제일 맛있는 파스타는 어떤 건지, 고객들이 유기농 식품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뭐든 답할 수 있어야죠. 뭐랄까…, 유기농 식품과 고객을 연결해 주는 ‘외교관’, 그게 제가 이 매장에서 하는 일입니다.”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의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 ‘센트럴 마켓’에서 만난 짐 핸슨 씨(68)를 이 매장 사람들은 ‘푸디(Foodie·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라고 부른다. 핸슨 씨를 포함해 5명의 푸디가 유기농 식재료가 진열된 위치와 제품 정보, 조리법을 고객에게 소개하고 있다. 유기농 식품매장은 끊임없이 신선한 제품을 매장에 진열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슈퍼마켓보다 훨씬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6500m²(약 1970평)인 댈러스 지점에만 4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 유기농 식품 전문가, 중장년도 ‘OK’


센트럴 마켓은 텍사스 주에 9개 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이다. 텍사스 주와 멕시코에 3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미국의 대형 유통그룹 ‘H-E-B’가 ‘참살이(웰빙) 바람’이 한창 불기 시작하던 1994년 유기농 식품 부문만 떼어 만들었다.

센트럴 마켓 댈러스점에는 세계 195개국에서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된 농산물과 축산물, 와인이 진열돼 있다. 가격이 일반 슈퍼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2, 3배로 비싸지만 신선하고 질 좋은 제품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월마트에서 2.99달러에 팔리는 햄버거용 쇠고기 패티가 우리 가게에서는 3.99∼4.99달러에 팔리죠. 그래도 댈러스에서 일본산 유기농 쇠고기 ‘와규’, 하와이산 유기농 참치 같은 제품을 파는 곳은 여기뿐이라서 입맛이 까다로운 고소득층 소비자들은 꼭 이곳에서 장을 봅니다.”

30년간 민간기업체에서 마케팅, 홍보 관련 업무에 종사해온 핸슨 씨는 3년 전 이곳에서 새 일자리를 잡았다. 유기농 식품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요리학교 졸업장이나 조리사 자격증은 필요 없지만 유기농 식품의 종류와 특성, 이들 재료를 활용하는 조리법 등을 묻는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6개월간 매장에서 수습직원으로 일하면서 실무경험을 쌓는다.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줘야 하기 때문에 회사는 오히려 중장년층을 선호한다.

핸슨 씨는 “댈러스점에서 일하는 5명의 푸디 중 제일 젊은 사람은 40대 중반, 가장 연장자는 70대 중반”이라며 “연봉은 전에 다니던 직장보다 줄었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 대형마트에서 소규모 창업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할리우드지역에 있는 ‘에레혼’은 1333m²(약 400평)로 규모가 크지 않지만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기농 슈퍼마켓이다. 매일 1700∼1800명의 단골 고객이 방문하는 이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90명. 내년 1월에는 가까운 도시인 맬리부에 2호점을 낸다. 미국에는 에레혼 같은 중형 유기농 슈퍼마켓이 2000∼2500개 있다. LA 에레혼 점장인 빅터 그레너 씨(49)는 미국 최대 유기농 전문 유통업체인 ‘홀푸드 마켓’ 등 유기농 유통회사에서 35년 이상 경력을 쌓은 이 분야 베테랑이다.

그는 “유기농 식품매장의 경쟁력은 품질과 신선도로 결정된다”며 “중소형 매장들은 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을 수 있어 대형 매장과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밀가루나 설탕 한 포대도 제조과정을 철저히 살펴 건강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만 진열한다. 각종 소스, 드레싱 등도 지역 농가에서 갓 생산한 제품으로 만든 것만 팔고 있다.

유기농 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도심이나 주택가의 편의점처럼 작은 규모로 문을 여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할리우드 도심에 있는 ‘로컬리’는 2009년 유기농식품 애호가와 채식주의자들을 타깃으로 문을 연 유기농 전문 소형 점포다. 47m²(14평) 크기의 점포에서 직원 10명이 교대로 근무하는데, 하루 200명 이상의 고객이 찾는다고 한다. 커피 곡물 와인 과자 등 유기농 제품 가운데 고기 맛 두부와 우유 대신 식물성 유지를 이용한 치즈를 넣은 채식주의자용 유기농 샌드위치가 대표 상품이다. 이 가게의 10.99달러짜리 유기농 샌드위치를 맛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조만간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가게의 멜리사 로지아 사장(33·여)은 유기농 식품시장의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유기농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유기농 식품이 환경과 건강, 지역사회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맥도널드에서도 유기농 식품을 팔 수밖에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댈러스·로스앤젤레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美 유기농식품 판매 年 30조원… 1만개 기업 ‘성업중’ ▼



미국 유기농무역협회와 천연식품협회에 따르면 미국 유기농 식품의 판매량은 1990년 10억 달러(약 1조1400억 원)에서 2010년 267억 달러로 빠르게 늘어났다. 유기농 관련 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현재 천연식품협회에는 1만 개 이상의 관련 업체가 소속돼 있다.

농업이 발달한 미국 텍사스 주와 캘리포니아 주는 유기농 산업의 발원지다. 세계 최대의 유기농 유통회사 ‘홀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은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에서 출발해 미국 전역에 점포를 두고 있다. 스프라우츠 파머스 마켓(Sprouts Farmers Market),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 등 유명 유기농 유통회사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유기농 산업은 도·소매점, 가공업체, 공급업체, 중개인 등 유통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내추럴 인더스트리 잡스’, ‘캐리어스 인 푸드’ 등 유기농 관련 일자리만 전문적으로 소개해 주는 사이트도 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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