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1부/미래형 직업을 찾아서]<7>일본의 복지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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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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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 불편한 노인 수발… 초고령사회 일본의 ‘행복 지킴이’

최근 일본 교토 시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개호복지사 이노우에 주리 씨(오른쪽)가 한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이노우에 씨는 노인들에게서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토=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최근 일본 교토 시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개호복지사 이노우에 주리 씨(오른쪽)가 한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이노우에 씨는 노인들에게서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토=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일본 교토 시 남구에 있는 한 다세대주택. 83세의 할머니가 17년째 혼자 살고 있는 이 집은 부엌과 방 한 칸이 전부였다. 누가 서 있으면 옆을 지나가기도 불편할 정도로 비좁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낡은 달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요일마다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는지 적어놓은 ‘약 달력’이다. 할머니는 우울증과 난청, 요통을 앓고 있다.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집 안은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난감할 정도다. 도움 없이 할머니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니시 지카코 씨(47·여)가 하는 일은 바로 이런 할머니들의 손발이 돼주는 것이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집을 찾아가 수발하고 청소, 설거지 등 가사를 돕는다. 심심해하는 노인들의 말상대도 해줘야 한다. 니시 씨는 “쉬운 직업은 아니지만 어르신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유지하고 행복해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초고령사회 ‘일본’ 지키는 노인 복지사


일본의 노인 요양보호 인력은 복지시설에서 노인을 돌보는 ‘개호(介護·곁에서 보살핌)복지사’와 노인이 살고 있는 집을 직접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홈헬퍼’로 크게 나뉜다. 일반적으로 개호복지사는 복지시설의 정규 직원으로 근무하며 홈헬퍼는 계약직으로 시간제(파트타임) 근무를 한다.

니시 씨처럼 두 종류의 자격증을 모두 보유하고 양쪽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학에서 가정학을 전공한 니시 씨는 시아버지 간병을 하다가 노인복지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됐고 아예 자격증을 따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그가 맡은 노인은 현재 20명이 넘는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이 일에 더 보람을 느껴요. 부모가 늙어가고 자녀들이 장성해 떠나는 걸 경험해 봐야 노인을 제대로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일본의 홈헬퍼들은 대체로 40, 50대 주부다. 자녀들이 학교에 간 시간을 이용해 몇 시간씩 일하는 경우가 많다. 급여는 시간당 1200엔(약 1만6900원) 수준. 일본의 일반적인 아르바이트 급여가 시간당 1000엔 안팎인 걸 고려하면 낮은 편이 아니다.

고령화 및 핵가족화로 홀몸노인이 많아지면서 가정방문 복지사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2025년이 되면 가구주의 나이가 65세 이상인 일본의 고령가구 중 혼자 살거나, 노인부부만 사는 가구의 비율이 67%(1267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인생의 의미’ 깨닫게 해주는 직업


미야기 현의 개호복지전문학교(2년제)를 졸업한 이노우에 주리 씨(35·여)는 교토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14년째 개호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이노우에 씨는 10명의 노인으로 구성된 한 유닛(단위)을 맡고 있다. 화장실로 안내하고, 목욕을 도와주며 옷 세탁과 방 청소, 기저귀 교환 등도 한다. 그는 노인들과 대화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많은 경험을 한 어른들의 얘기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사소한 고민을 얘기해도 항상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조언을 해주세요.”

직업의 특성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아픔도 있다. 돌보던 노인이 하나둘씩 세상을 뜰 때다. 이노우에 씨도 지금까지 어르신 50명을 떠나보냈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장례식을 치르며 고인의 가족들이 ‘덕분에 끝까지 밝게 살다 가셨다’고 고마움을 표시하면 큰 위로가 됩니다.”

같은 복지시설에서 만난 남자 개호복지사 나카야마 요스케 씨(32) 역시 “비참한 상황에서도 노인들이 열심히 밝게 살아가는 것에 감동을 느낀다. 힘든 일이 적지 않지만 공부가 되는 점도 많다”고 했다. 이노우에 씨와 나카야마 씨가 일하는 시설에는 160여 명의 노인이 있다. 직원들의 연봉은 250만∼350만 엔(약 3500만∼5000만 원)이다.

○ 고객의 마음까지 살피는 전문직


개호복지사나 홈헬퍼들은 단순한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와 달리 철저한 직업관과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니시 씨는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는 시키는 일만 하지만 복지사들은 노인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스스로 파악해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처받기 쉬운 노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등 심리적 안정까지 고려한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돌보는 노인들과 신뢰와 유대를 형성해야 한다.

‘예의’는 홈헬퍼와 개호복지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예를 들어 홈헬퍼들은 노인이 있는 가정을 방문할 때 처음에는 반드시 대문을 가볍게 두드리도록 교육받는다. 자고 있는 노인들을 깨우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노크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나오다가 넘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일본식 다다미방에서는 다다미의 경계선을 밟지 않는 전통 격식까지 갖춰야 한다.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개호복지사들도 노인들의 취향에 따라 음식을 내오는 방법, 쓰는 말투 등을 달리 한다.

나카야마 씨는 “자기 마음대로 ‘이 분이 이런 걸 원하겠지’라고 예상해 행동하면 문제가 생긴다. 노인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만큼 개호복지사로 일하려면 유연한 사고방식과 적응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토=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중증환자는 개호 서비스, 등급 낮으면 홈헬퍼 제공… 비용 90% 국가가 부담

■ 日의 노인요양 복지체계


개호(介護)보험을 2000년 도입한 일본은 각종 노인요양 서비스를 전 국민에게 보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복지사가 있다. 병이나 치매에 걸린 노인이 개호 신청을 하면 지방정부는 전문 상담사(케어매니저)의 조사를 통해 개호 등급을 매긴다.

중증 환자는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 개호복지사의 서비스를 받고, 등급이 낮으면 가정 방문을 하는 ‘홈헬퍼’의 도움을 받게 된다. 개호에 들어가는 비용의 90%는 보험료를 바탕으로 국가가 부담하고 나머지 10%만 본인이 낸다. 국민들이 낸 돈으로 요양 시스템이 운영되기 때문에 노인들은 자원봉사의 수혜자가 아닌 떳떳한 이용자의 자격으로 서비스를 받는다.

케어매니저와 개호복지사는 정기적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해서 국가자격증으로 관리하며, 홈헬퍼는 민간자격증이지만 정부 인증을 받는다. 개호복지전문학교를 통해 인력이 육성되기도 한다. 다만 높은 업무강도와 스트레스 등으로 노인복지에 종사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어든다는 점이 일본 정부의 고민이다.

교토=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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