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1부/미래형 직업을 찾아서]<1>싱가포르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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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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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전세계 환자들과 24시간 핫라인… 의료서 통역-관광까지 풀서비스

22일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탄톡생 국립병원에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미키 쩐 씨(오른쪽)가 해외에서 온 여성 환자에게 의사의 진료 내용을 통역해주고 있다. 이 병원에는 쩐 씨를 포함한 4명의 코디네이터가 근무하고 있다. 싱가포르=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22일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탄톡생 국립병원에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미키 쩐 씨(오른쪽)가 해외에서 온 여성 환자에게 의사의 진료 내용을 통역해주고 있다. 이 병원에는 쩐 씨를 포함한 4명의 코디네이터가 근무하고 있다. 싱가포르=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확히 어디가 편찮으세요? 무슨 진료를 받고 싶으신지요.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입국은 언제가 편하신가요.”

22일 싱가포르 중심가에 있는 160여 년 역사의 탄톡생 국립병원. 병원 1층 국제환자센터에서 다이애나 캄사니 씨(25·여)는 인도네시아에서 주로 쓰이는 바하사어(語)로 한참을 통화했다. 특급호텔 로비를 연상시키는 센터 안은 대리석 등 최고급 자재로 꾸며져 있었다.

“망막에 질환이 생긴 인도네시아 환자한테서 급하게 연락이 왔어요. 최대한 서둘러 담당 의사를 찾아 약속을 잡고 여행 일정을 짜서 알려줘야 해요.”

캄사니 씨의 직책은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그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인접국은 물론이고 유럽,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진료 예약, 입원 수속, 병원비 납부, 의사와의 통역 등 전 과정을 책임진다. 필요하면 공항까지 나가 환자를 맞이하고, 퇴원 이후에는 치료 경과를 체크하고 관광 일정을 챙겨준다. 싱가포르에서 완벽한 의료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최상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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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이 끝난 뒤에도 직원들이 교대로 해외에서 걸려오는 ‘핫라인’ 전화를 받고, 주말에도 블랙베리폰으로 수시로 e메일을 체크해 답변을 해야 합니다.” 세계 각국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다 보니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는 설명이다.

인도네시아계로 호주 퀸즐랜드대에서 약학을 전공한 그는 2년 전인 2010년부터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 평균 15∼20명의 외국인 환자를 사무실과 진료실, 공항, 호텔 등을 오가며 상대한다. 이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는 전체의 10∼15%로, 중국 홍콩 베트남에서 오는 환자들은 다른 3명의 코디네이터가 맡는다.

캄사니 씨의 동료인 미키 쩐 씨(26·여)는 올해 초 이 병원으로 스카우트되기 전 다른 민간병원에서 마케팅 직원으로 일했다. 베트남계인 쩐 씨는 6년 전 싱가포르에 건너와 대학에서 호텔관광학을 전공하고 영주권을 얻었다. 그는 “일주일 평균 4, 5명의 베트남 환자를 관리하고 있다”며 “베트남 환자를 총괄하는 ‘컨트리 매니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싱가포르는 1970년대부터 상대적으로 발전 단계가 낮은 주변 국가의 부유층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의료관광 선진국이다. 2010년에 60여만 명의 해외 환자가 찾아왔으며 올해는 100만 명 정도가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는 진료를 제외하고 해외 환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료관광의 핵심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 지식뿐 아니라 외국어 구사 능력, 관광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의사, 간호사 못지않은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한 민간병원에서 일하는 코디네이터 노르제나 람리 씨(29·여)의 단골 고객 중에는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의료관광을 하러 오는 중동의 부자들도 있다. 이 병원엔 1000만 원을 웃도는 정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찾는 중국인 부자 고객도 여러 명이다.

“오늘은 누가 싱가포르에 도착해 진료를 받는지 리스트를 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많을 땐 하루에 20명 정도가 와요.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것도 제가 할 일입니다.”

싱가포르의 코디네이터들은 고객 유치를 위한 홍보 마케팅 업무도 담당한다. 국내외 언론과 지역사회에 의료관광의 성과를 알리는 광고와 홍보를 꾸준히 한다. 이들의 급여는 성과에 따라 차이가 난다. 입사 초기인 람리 씨의 월 소득은 2500싱가포르달러(약 226만 원)로 낮은 편이지만 경력이 쌓이고 단골 고객이 많아지면 코디네이터들의 소득은 빠르게 불어난다.

이슬람학을 전공한 람리 씨는 싱가포르대에서 2년간 아랍어를 강의했으며 영어도 능숙하다. 그가 다니는 병원에는 원래 아랍어 전문 코디네이터가 한 명 있었지만 중동지역에서 오는 환자가 많아지자 지난해 가을 람리 씨를 추가로 뽑았다. 병원에 다니기 전 의료 관련 경험은 없었어도 채용된 후 의학 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병원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들의 VIP 환자 유치는 싱가포르의 관광수익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람리 씨는 얼마 전 코 수술을 하러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여성 환자를 맡았다. 이 환자는 수술 하루 만에 퇴원했지만 수술을 전후해 2주간 싱가포르에서 관광과 쇼핑을 즐기며 많은 돈을 썼다. 람리 씨는 유명 카지노 리조트인 ‘마리나 베이’와 고급 휴양지인 센토사 섬 등 싱가포르의 대표적 관광지를 고객에게 소개하고 관광 일정을 짜준다. 고객이 원하는 최고급 호텔과 유명 식당 예약도 대신 한다.

다민족 개방사회인 싱가포르의 의사들과 무슬림인 아랍계 환자들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람리 씨는 “이슬람 사회에선 남자 의사가 가족의 입회 없이 여자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게 돼 있다”며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고 병원과 환자의 이해를 구하는 것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코디네이터 업무는 긴장의 연속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의료라는 민감한 서비스를 중개하는 업무를 맡다 보니 조금만 방심해도 의료사고로 번질 수 있다. 자신이 맡은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한밤중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코디네이터를 선발하는 싱가포르 병원들의 채용 공고엔 지원요건으로 ‘긴장된 상황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 ‘시간외 근무가 가능한 사람’ 등이 반드시 포함돼 있다.

탄톡생 국립병원의 캄사니 씨는 “시간이 촉박한 환자와 바쁜 의사들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료와 숙박, 여행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은 까다로운 퍼즐을 짜는 것처럼 압박감을 주는 일”이라며 “하지만 내가 담당한 환자가 건강하고 기분 좋게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의료 서비스업’ 종사자인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서비스 정신’이다. 몸이 아픈 환자를 고객으로 삼기 때문에 긍정적인 마인드와 친절함은 기본이다. 정기적으로 외국어, 커뮤니케이션, 고객 대응 서비스 등에 대한 교육도 받아야 한다. 싱가포르 병원들은 퇴원하는 해외 환자에게 코디네이터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해 점수가 낮으면 보너스를 깎고, 점수가 높으면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준다.

해외로 치료 받으러 온 환자들을 위해 때론 가족 역할까지 해야 한다. 람리 씨는 “이달 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임신부를 맡았는데 남편이 함께 오지 못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2시간 동안 분만실에서 산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며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정말 해보기 힘든 경험”이라며 활짝 웃었다.

싱가포르=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인구 500만 도시국가에 올해 100만명 몰릴 듯 ▼
■ 싱가포르의 의료관광산업


인구 500만여 명의 싱가포르는 지난해 전체 인구의 2.6배가 넘는 1320만 명의 외국인이 방문할 정도로 국제화된 도시국가다. 최근 카지노 리조트 사업이 번창하면서 의료관광 사업은 더 확대되는 추세다. 민간병원들은 많게는 10∼20명의 코디네이터를 채용해 해외 환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찾는다. 중국 인도 러시아 베트남 중동 등 자국 의료수준이 떨어지는 나라의 환자들도 꾸준히 싱가포르를 방문한다. 유럽과 미국 출신 환자들도 적지 않은데, 이는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고 의료비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쓰는 코디네이터가 일하는 대형 병원도 3, 4곳이 있다. 탄톡생 병원은 올 2월 ‘한국 클리닉’을 새로 열고 의사와 코디네이터를 모두 한국인으로 배치했다. 다만 이는 한국에서 오는 환자들보다 2만 명에 이르는 한국 교민과 현지인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싱가포르가 의료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선 한국을 의료관광의 경쟁국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싱가포르=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싱가포르#의료관광#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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