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여래불 오시던 날, 막내 무상은 덩실덩실 바라춤을 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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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석가모니상 왼쪽에 새로 모신 약사여래불상을 가렸던 흰색 천이 내려지고 흰색 고깔이 벗겨지자 명안 스님(38)의 독경 소리가 빨라졌다. 양옆에 앉아 독경을 하던 무상 스님(36)과 덕성 스님(57)이 일어나 불공을 드리던 신도 30여 명의 손을 오색사(五色絲)로 묶었다. 새로 오신 약사여래불상과 신도들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였다. 가장 막내인 무상 스님이 석가모니상 앞에 나와 양손에 낀 바라(심벌즈와 유사한 불교 전통 악기)를 마주치며 덩실덩실 승무를 췄다. 긴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은 마치 학이 춤을 추는 듯했다. 두 형님 스님은 나팔을 불고 징을 치며 흥을 더했다. 》  
미국 뉴저지 주 소심사에서 열린 약사여래불상 점안식에서 미국인 스님들이 불교 음악 공연을 하고 있다. 무대에서 무상 스님이 
바라춤을 추고 있고 명안 스님과 덕성 스님이 전통악기로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플레인필드=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 뉴저지 주 소심사에서 열린 약사여래불상 점안식에서 미국인 스님들이 불교 음악 공연을 하고 있다. 무대에서 무상 스님이 바라춤을 추고 있고 명안 스님과 덕성 스님이 전통악기로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플레인필드=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 미국인들에게 불교 알리는 소심사

미국 뉴저지 주 플레인필드 기차역 주차장 한쪽에 들어선 소심사(小心寺).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인 이 절의 철문 위에는 ‘소심사 Zen Center(명상센터)’라는 간판이 크게 붙어 있다. 한글과 영어가 나란히 써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겉에서 보면 허름한 가건물 같지만 철문을 열고 들어서 달마 그림이 웃는 현관을 지나면 석가모니상이 법대 위 높은 곳에 자리한 법당의 풍모가 물씬 풍긴다.

이달 1일 정오 무렵 이 절의 법당에서는 삼라만상의 건강을 관장하는 약사여래불을 모시는 점안식(불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 행사가 열렸다. 지금까지는 석가모니상과 그 오른쪽에 관음보살상만 있었는데 이번에 왼쪽에 약사여래불상까지 모시면서 3위 일체를 이룬 것이다. 이 경사스러운 행사에서 벽안(碧眼)의 미국인 스님 3명은 범패(梵唄·불교 음악) 공연으로 흥을 돋웠다.

소심사에는 3명의 미국인 스님이 수행하며 미국인들에게 불교를 널리 알리고 있다. 미국인이 미국인을 상대로 영어 설교를 통해 불교를 전파한다는 점에서 한국 교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한국 스님이 한국말로 설교를 하는 미국 내 여느 절과는 다르다.

명안 스님은 소심사 주지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고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왔다. 쿠바 난민 출신 아버지를 둔 무상 스님은 심리학 박사 출신 럿거스대 교수다. 가장 나이가 많은 덕성 스님은 미국 토박이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둔 대처승. 현재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태권도장에서 시작한 불교 전파


이 절은 한 한국인 태권도 사범의 결심과 집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심혁근 관장(76)은 이날 법당 한쪽에서 세 제자를 뿌듯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가 23년 전인 1992년 20명의 태권도 문하생을 상대로 불교 수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1975년 미국에 온 뒤부터 한국의 태권도와 불교를 미국 사회에 전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태권도장들은 번창해 갔지만 절은 그렇지 못했지요. 미국인에게 한국 불교를 전할 수 있는 미국 스님이 없었기 때문이죠. 없으면 ‘내가 기르자’. 그래서 시작했어요.”

1992년 불교 수업을 시작할 당시 명안은 15세, 무상은 13세의 소년이었고 덕성은 34세였다. 태권도가 멋있어 보여 도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들은 호기심에 끌려 심 관장의 불교 수업을 듣게 됐다. 심 관장은 태권도 수업이 끝난 뒤 우선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이어 단전호흡과 불교 철학으로 공부가 깊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은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갔고 이 3명만 남게 됐다.

태권도 수련생이 철들어 스님이 되기까지 심 관장님은 제2의 아버지였다. 처음 가부좌를 틀고 앉던 날 채 2분도 못 버티던 제자들의 몸과 마음을 혹독하게 단련했다. 친형제처럼 친했던 명안과 무상이 사춘기를 지나며 방황할 때 그들을 감싸 안고 기도했다. 나이가 들어 입문한 덕성은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명안은 2003년에, 무상과 덕성은 2008년에 스님이 됐다.

“공부하면 할수록 불교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딱히 언제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점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주저함이 없이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명안 스님)

“대학생이 되면서 스님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부모님은 처음에는 반대했죠. 하지만 스님은 중생들을 부처님의 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선생님이라고 설득했고 부모님은 그제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허락해 주셨습니다.”(무상 스님)

○ 200여 명으로 늘어난 신도들

그렇게 스님이 된 세 사람은 2009년 7월 소심사의 문을 열었다. 처음 절을 시작한 곳은 뉴저지 주 워런 카운티에 있던 심 관장의 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알음알음으로 미국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신도는 100여 명으로 늘었다. 일요 법회 때 차를 세울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2013년 기차역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새로운 터전으로 미국인 불자들이 속속 찾아와 지금은 200여 명에 이른다. 이날 점안식에도 백인과 흑인은 물론이고 아랍인과 히스패닉, 한인 등 다양한 인종의 신도들이 참석해 약사여래불을 맞았다. 미국에 불고 있는 불교의 인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1893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를 시작으로 본다면 미국 불교의 역사는 올해로 122년째다. 티베트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한국 등 발원지가 다양한 아시아 불교가 미국 전역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인들이 새로운 사상과 지성에 목말라했던 1970년대부터 신도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현재는 기독교와 유대교에 이어 3대 종교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불교 신자는 35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한다. 단순히 명상 수련만 하는 인구를 합하면 1000만 명은 훌쩍 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기독교 하나님의 나라인 미국에서 왜 불교 인구가 늘어나는지에 대해 스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명안 스님은 “기독교 등 다른 종교들은 율법과 계율을 가르치고 신에게 의지하라고 하지만 불교는 불자들이 참선을 통해 스스로 내면을 탐구하고 다스리면서 안정과 평화에 이르도록 한다는 점에서 훨씬 주체적인 종교”라고 설명했다.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면서 ‘나는 무엇이냐’라는 실존적 고민에 빠진 미국인들이 명상의 매력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 스님이 건넨 오색사와 붉은 콩 세 알

이번에는 절을 찾은 신도들에게도 물었다. 네팔 출신 툴시 마하르잔 박사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에는 갈등이 많다. 이로 인한 조급증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흑인 여성인 실크 그라제트 씨도 “미국인들은 사람의 표면만 보고 내면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항이 강하다. 명상을 통해 나의 내면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 중 25세로 가장 젊은 존 에킨스버거 씨는 자신을 2년 전만 해도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감옥에도 갔던 문제아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연히 덕성 스님을 만나 소심사를 찾게 됐고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이제 마약 없이도 집중할 수 있다. 불교가 내 생명을 구했다”고 기뻐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점안식 예불이 끝나자 스님들은 신도들의 손목에 감았던 오색사를 가위로 끊어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모두에게 건넸다. 한낱 물건일 뿐인 불상이 이제 당신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하나의 신으로 관계를 맺었다는 증표였다. 명안 스님이 악귀를 쫓기 위해 불상을 향해 던진 붉은 콩 세 알도 함께 담겨 있었다.

“가난하건 부자건, 나이가 많건 젊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부처님을 찾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우리들의 행복이지요.”

점안식이 진행되는 동안 때마침 내린 폭설을 뚫고 소심사를 나설 때 심 관장과 세 스님이 합장을 하며 오색사와 붉은 콩 세 알이 든 비닐봉투를 하나 건넸다. 모든 만물이 시공을 넘어 억겁의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 따듯했다.

플레인필드=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불교#약사여래불#막내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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