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金과장의 살림전쟁 2년… 아빠의 행복에 눈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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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의 집에서 김경언 씨가 둘째 준영이를 품에 안은 채 첫째 준희에게 점심을 먹이고 있다. 김 씨는 
아내가 일을 하기 시작하자 1년간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둘째 준희가 태어나면서 1년을 더 연장해 총 2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다음 달 중순 복직을 앞둔 그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 백수였다”며 “육아휴직을 계기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수원=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4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의 집에서 김경언 씨가 둘째 준영이를 품에 안은 채 첫째 준희에게 점심을 먹이고 있다. 김 씨는 아내가 일을 하기 시작하자 1년간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둘째 준희가 태어나면서 1년을 더 연장해 총 2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다음 달 중순 복직을 앞둔 그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 백수였다”며 “육아휴직을 계기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수원=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기가 일찍 나올 수도 있겠어요. 스스로 숨을 쉴 수 있을지….”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눈칫밥을 먹어가며 얻은 둘째였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 과장’이,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내와 첫째를 뒷바라지하고 얻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둘째였다.

지난해 4월. 예정일보다 6주 일찍 태어난 둘째는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1년 같은 하루가 세 번이나 지났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우리 둘째는 씩씩하게 저 문을 열고 나올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셨네요. 퇴원해도 되겠어요.”

엄마 배 속을 조기 졸업한 둘째는 인큐베이터도 조기 졸업했다. 둘째를 처음 안는 그 순간 김경언 씨(33)가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야. 우리 둘째 건강히 키우려면 아무래도 내가 육아휴직을 1년 더 해야겠어.”

○ 아빠가 안으면 우는 아들


“아이고, 우리 아들 다 컸네.”

아내의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2012년 5월 태어난 첫째 준희(3)가 처음으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날이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준희는 아내의 구령에 맞춰 한 발씩 걸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지방 출장 중이었던 아빠는 준희가 처음 걷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아빠도 다른 회사원들처럼 고된 일상을 보냈다. 날마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 밤별을 보고 퇴근했다. 그때마다 준희는 늘 잠들어 있었다.

준희도 아빠를 낯설어했다. 아빠가 안으면 기를 쓰고 울었다. 잠은 엄마 옆에서만 잤다. 주말을 온전히 쏟아 부어도, 준희가 아빠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짧았다.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 복무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얻었다. 전역한 지 3일 만에 출근했고, 5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준희는 이런 고된 생활에서 얻은 축복이었다. 그러나 준희는 바쁜 아빠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아빠도 점점 더 지쳐갔다.

○ ‘김의 전쟁’의 시작

준희 때문에 꼼짝 못하던 아내는 중단했던 공부를 2013년부터 다시 시작했고, 임상심리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다. 충북 청주에 있는 장모가 경기 군포의 사위집을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오가며 준희를 돌봤다. 부부와 장모는 물론이고 준희에게도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때 마침 아빠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문득 10년 넘게 앞만 보며 달려온 인생의 배터리를 다시 충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욕심 차리자고 모두한테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차라리 내가 휴직을 할게.”

일단 아내는 대찬성. 평소 아들의 고된 회사생활을 안쓰럽게 여기던 아버지도 “네가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처가도 사위의 뜻을 꺾지는 않았다.

마지막 관문은 회사 인사팀. 김 씨의 신청서가 상관을 거쳐 인사팀에도 들어갔다.

“가능하긴 한데…. 복직은 하실 건가요? 다른 회사 사례를 보면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다가 퇴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요.”

“네, 당연합니다. 꼭 복직하겠습니다.”

김 씨는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줄 동료 직원 1명도 추천했다. 대체인력까지 확보되자 인사팀도 김 씨의 신청을 받아줬다. 2013년 4월. ‘일가(家)양득’을 향한 ‘김(金)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전쟁 같은 하루, 그러나….


“준희야. TV는 이거 다 먹고 보자.”

“아이고, 준영아. 지지야 지지. 어디서 또 이런 걸 묻혀왔어.”

김 씨의 전쟁터는 회사가 아니라 경기 수원시 금곡동의 아파트다. 상대는 두 아들. 아침식사 때 이미 한바탕 치른 전쟁은 준희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낮 12시부터 본격화된다. 몸이 세 개라도 모자라지만 서너 개의 일을 동시에, 그리고 완벽히 해내야 한다.

전의를 불태운 김 씨가 일단 두 아이의 기저귀를 동시에 간다. 준희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준영이를 계속 주시한다. 시야에서 놓쳤다가는 언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준영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는 만화영화를 크게 틀어놓는다. 다행히 만화를 좋아하는 준희는 이 시간만큼은 별 탈 없이 TV 앞에만 가만히 앉아 있다.

가장 큰 고비인 점심시간.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준영이를 품에 안고 일단 준희에게 밥을 먼저 먹인다. 한창 뛰어놀 나이인 준희는 먹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아빠. 이따가 놀이터 가자.” “만화 다른 거 틀어줘.” “동화책도 읽어줄 거지?”

“어, 그래그래. 하지만 이거 다 먹어야 놀이터 갈 거야.”

식사가 길어질수록 준영이를 안은 팔이 심하게 저려온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가 끝나면 이제 준영이 차례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수제 이유식을 떠먹이는 동안 배가 부른 준희는 집 안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이 시간쯤 되면 집 안은 이미 난장판.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시선은 아이들이 있는 거실에 둔다. 설거지 도중에 울음을 터뜨린 준영이까지 달래주다 보면 KO 직전까지 몰린다. 결국 청소는 아내가 돌아온 뒤에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후 2시 아이들이 낮잠을 자면서 전쟁은 잠시 휴전한다. 김 씨는 이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저녁거리 장을 본다. 독서나 영화 감상, 복직 준비도 이 시간에 해야 한다. 오후 5시부터 3차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놓는다.

3차전이 끝나갈 무렵인 오후 8시 드디어 벨소리가 울렸다. “엄마다!” 엄마를 반기는 아빠의 목소리가 이렇게 클 수가 없다. 김 씨가 미처 못 한 빨래를 아내가 돌리면서 말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이제 나보다 잘하는데? 이제 나가서 돈 좀 벌어오지?”

“어이 바깥양반. 당신이 더 수고했지. 그래도 이제 애들이 나를 낯설어하지 않네. 돈은 휴직 끝나면 열심히 벌게!”

어느덧 준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빠가 만든 간장계란밥과 아욱국이 됐다. 세 번의 전쟁으로 점철된 김 씨의 하루는 이처럼 모두가 ‘승자’인 행복으로 끝난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수


당초 1년으로 계획했던 아빠의 육아휴직은 다음 달이면 꼬박 2년이 채워진다. 둘째 준영이가 예정일대로 태어났다면 1년만 휴직하고 복직할 계획이었지만 휴직 만료 전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1년 연장을 결정했고, 회사도 이를 허가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가 2년이나 육아휴직을 한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준영이를 조산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거죠. 걱정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부러워해요.”

고용보험기금에서 지급되는 육아휴직급여와 아내의 수입이 있긴 하지만 휴직 전 5000만 원을 넘던 수입은 40% 이상 줄었다. 휴직 이후에는 김 씨 부부 모두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지 못했고, 외식은 먼 나라 얘기다. 다행히 두 아들 모두 모유 수유를 한 덕분에 분유값을 아낄 수 있었고, 여전히 회사에 재직 중인 신분이라 은행에서 대출도 받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전셋집도 옮겼다.

“사람이 벼랑 끝에 몰리면 다 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충분히 살 수 있겠더라고요. 5000만 원 벌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이제 애들이 절 낯설어하지도 않거든요.”

원래 겁이 많은 준희는 자다가 깨거나 무서움을 느낄 때 엄마를 찾았다. 그러나 요즘엔 그럴 때마다 아빠를 찾고, 아빠 품에 쏙 안긴다. 아들이 품에 안길 때마다 김 씨는 새삼 느낀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 백수가 아닌가 하고.

김 씨도 복직 이후 삶에 대해 낙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보다 승진이 늦는 건 당연하다. 성과 압박도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압박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달라졌다. 휴직 전에는 이유 없이 조급하고 짜증을 냈다. 일로 생긴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휴직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자신감과 여유다. 돈과 성공보다는 가족, 그리고 삶의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이 아빠를 돈 벌어 오는 기계로만 생각할 것 같았어요. 이제 조금은 아빠로 여기는 것 같으니 정말 다행이죠. 물론 복직을 하면 더 힘들겠죠.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짜증을 내지는 않을 겁니다. 두 아들 육아도 해냈는데, 회사일이야 더 잘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여전히 두 아들 밥을 먹이며 다음 달 복직까지 준비하는 김 씨가 준희에게 물었다.

“준희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음. 아직은 엄마가 1등! 아빠는 2등!”

아빠가 1등으로 올라서는 그날까지, ‘김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수원=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김과장#살림전쟁#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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