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가시밭 맨몸으로…” 탈북자에 마술 걸고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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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꿈꾸던 ‘공무원 과학자’ 이원근 박사의 ‘인권 사랑’

이원근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이 지난달 31일 경기 안성시의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수용시설인 하나원 대강당에서 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과학자이자 프로 마술사인 그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은 내 나라’라는 생각이 들도록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성=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원근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이 지난달 31일 경기 안성시의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수용시설인 하나원 대강당에서 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과학자이자 프로 마술사인 그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은 내 나라’라는 생각이 들도록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성=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지난달 31일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수용시설 하나원 대강당. 무대 위로 올라선 마술사는 콜라 캔 속에 담긴 내용물을 비우고 캔을 찌그러뜨렸다. 마술사가 손을 대니 거짓말처럼 다시 캔이 펴졌고 뚜껑을 열자 콜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콜라를 담은 컵에 부채질을 하니 꽃가루로 변해 휘날린다. 지켜보던 탈북자 300여 명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다. 이들은 “마술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평소 적막하던 하나원에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이날 마술을 선보인 사람은 이원근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49)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식물학 박사 출신의 과학자이자 프로마술사이기도 하다. 그는 탈북자 지원단체 ‘통일시대사람들’의 고문단장도 맡고 있다. 이날 행사는 탈북자에 대한 일종의 ‘재능 기부’였다. 》
2월 초 이 박사는 북측에 가족을 둔 탈북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중국 선양(瀋陽)에 탈북자 12명이 체포돼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내 동생이다.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새 체포된 탈북자는 31명으로 늘었고 이 중에는 미성년자 3명과 70대 노인이 포함돼 있었다. 북한에서는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뒤 대대적인 탈북자 단속에 나섰고, 중국은 김정은을 적극 지원하는 상황이었다.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이들을 체포한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 박사는 탈북자 지원단체들과 함께 중국 측에 협상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전까지는 ‘물밑 협상’을 통해 돈을 지불하고 탈북자를 빼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중국 측이 ‘협상 불가’를 고집했다. 이 박사는 외교통상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외교부가 중국 정부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중국 측은 일절 확인을 거부했다.

[채널A 영상] 심양에서 연길에서…탈북자 북송 ‘현재 진행중’

협상을 통한 구출이 어려워지자 통일시대사람들은 2월 14일부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며 공론화에 나섰다. 이 박사는 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호소문을 번역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e메일로 퍼뜨렸다. 중국 내 인권단체들에 협조를 요청했고, 알고 지내던 정부·정치권 인사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국내에서도 탈북자 북송 반대 운동이 벌어졌지만 결국 이들을 구출하지 못했다.

그는 “이 정도 했으면 적어도 미성년자들은 구할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상심이 컸다”며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직접 북한에 들어가 미국 기자들을 구출해왔는데 왜 한국은 그렇게 못 하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정부와 정치권이 겉으로는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탈북자를 데려오기 위한 태스크포스(TF) 하나 만들지 않았다”며 “현장을 뛰는 사람도, 전략을 짜는 사람도 없는 죽은 외교다”라고 비판했다.

이 박사의 어렸을 때 꿈은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에는 놀러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농가에서 5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독립해 ‘꿈’을 이루기 위해 진주기계공고에 진학했다.

고교 2학년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하얀 교복을 입고 학교 다니는 인문계 친구들이 부러웠다. 뭔가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의 섭리를 공부할 수 있는’ 생물학과를 선택했고, 폐결핵으로 투병하면서도 경상대에 합격했다.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만큼 공부는 아주 재미있었다. 4년 평균학점이 4.5 만점에 4.4 정도 나왔다.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다. 그는 갖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서울대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유학을 떠났고 순탄하게 박사 과정(식물분자세포학)을 이수해 나갔다. “공부를 하다보니 노벨상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이 박사는 회고했다.

○ ‘사회’에 눈뜬 과학자


그렇게 박사 과정이 끝나갈 무렵 그는 문득 회의에 빠졌다. ‘순수과학을 통해 사회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쌓은 지식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일반인에게 과학을 쉽게 알려주기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을 다니다가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과학문화재단(현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실장을 맡았다.

이어 1999년 한국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를 창립했다. 과학을 대중화하려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쌍방향 소통’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이 연극을 통해 과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과학극단 키스(KISS·Korea Initiative For Shocking Science)도 설립했다. 이 박사는 “한국에 이런 극단이 없어서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한 대기업을 2년간 끈질기게 설득해 자금 지원도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 ‘그들과의 소통’위해 프로마술사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 공연을 다니던 중 그는 마술의 놀라운 효과에 눈을 떴다. 이 박사는 “공연 도중 한 연기자가 간단한 마술로 과학원리를 설명해줬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래서 아예 본인 스스로 마술사가 되기로 하고 6개월 정규 마술사 과정을 이수한 뒤 2004년 국제마술사협회(IBM)의 정회원 인증을 받았다. 프로마술사가 된 것이다. 이후 그에게는 마술이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 됐다. 특히 과학원리를 마술에 적용하는 ‘과학마술’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이 박사에게 마술을 가르친 박병준 씨는 “과학마술은 오히려 내가 이 박사에게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래를 사랑하는 연구인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과학정책을 비판하는 역할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올바른 과학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런 고민 속에서 2009년 국회입법조사처에 들어갔다. 이 박사는 “과학 정책을 입안하는 것도 넓게 보면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한 영역”이라고 소개했다.

이 무렵 그의 인생에 중요한 또 하나의 계기가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탈북자들과 우연히 만나게 됐고 그들이 쓴 수기를 읽게 됐다. “탈북 과정에서 추적자들에게 쫓기다 선인장 밭을 맨몸으로 지나가 가시투성이가 됐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는 글을 접하며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탈북자들의 고통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입국한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천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대한민국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실제 2일 이 박사와 함께 만난 20대 탈북자 A 씨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탈북자에겐 돈을 덜 준다. 내가 작은 실수만 해도 주변에서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본다. 탈북자에 대한 차별이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 누군가 미행하고 있다는 느낌… 공포…


이원근 박사. 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이원근 박사. 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이 박사도 탈북자 운동에 나서기에 앞서 두려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간첩단, 암살 같은 단어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진심을 알아가면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는 2010년 통일시대사람들에 참여하면서 탈북자 지원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성인 탈북자보다 생활여건이 더 어려운 탈북 청소년들을 돕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지난해 여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심포지엄 참석차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는 누군가가 미행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e메일이 해킹당한 흔적도 있었다. 그는 “내가 외국에 자주 나가면서 탈북자들과 어울리니 의심을 받을 만도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강제북송 저지 국면이 일단락된 뒤에도 탈북자 단체들은 계속 구출운동을 전개했고, 최근 북-중 국경 지대에서 이른바 ‘백두산 꽃제비’ 9명을 구출해 제3국으로 피신시켰다고 이 박사가 전했다.

○ ‘대한민국은 내 나라’라는 생각 갖게…


탈북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하나원 마술공연 현장에는 이 박사 등 13명으로 구성된 국회입법조사처 ‘소수·소외계층을 위한 행복연구회’, 한국과학커뮤니케이터협회, 통일시대사람들 회원 등 20여 명이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탈북자와 처음 직접 만나봤다는 이화여대 민주영 교수는 “탈북자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지만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묻어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런 관심과 경험이 모이면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와 하나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이 박사는 믿고 있다.

그의 소망은 단순하다. 탈북자들을 한국인과 똑같은 국민으로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이 박사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은 내 나라’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그들을 지켜주고 대우해줘야 그들의 탈북 과정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탈북자들을 만나보면 통일 이후의 상황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을 적극 포용하고 활용해야 한다”며 “탈북자들도 주변의 도움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탈북자#마술#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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