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행복한 사회]<8>서러운 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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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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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수발… 손주 양육… 엄마의 ‘돌봄’ 의무엔 정년이 없다

일러스트 서장원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 서장원기자 yankeey@donga.com
《 수명 100세 시대다. 그러나 중년 엄마들은 달갑지 않다. 시부모와 친정부모를 돌보는 것은 ‘의무’가 됐다. 자식은 장성해도 여전히 큰 짐이다. 자식이 결혼하면 손주 돌봄이 역할도 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도, 돈도 없다. 노후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엄마를 지켜보며 딸들은 생각한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딸들은 또 말한다. 나는 당당한 여자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그 딸들의 바람이 이뤄질까. 엄마들에게 헌신을 강요하는 문화가 바뀌기는 할까. 》
○ 돌봄 의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박모 씨(46)는 시어머니가 “몸이 안 좋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70대 중반의 시어머니는 몇 년째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의 수발을 도맡고 있다. 그 덕분에 박 씨는 돌봄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만약 어머님마저 거동이 불편해지시면 두 분을 제가 수발해야 합니다. 가정 형편상 가사도우미를 쓰지 못하니까요. 가뜩이나 힘든 살림인데,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죠.”

중학생 아들 2명이 있는 김모 씨(44)는 퇴근하면 바로 시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으로 건너간다. 시어머니가 무릎수술 후유증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은 4년 전. 그때부터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김 씨의 몫이 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도움을 빌리려 했다. 그러나 치매나 거동이 완전히 불가능한 중증질환자가 아니어서 시설 입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 가끔 요양사가 찾아와 몸을 씻기거나 체조를 시켜준다. 그때 말고는 오롯이 김 씨가 돌봐야 한다.

“내 자식들을 챙긴다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시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일어난다면야 모를까, 그저 절망할 따름이죠.”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국가가 노인부양의 책임을 진다는 취지에서 2008년 7월 시작됐다. 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2009년 74.7%에서 올해 86.9%로 높아졌다. 노인을 돌보던 가족의 97.2%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에게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 65세 이상 노인(542만 명) 가운데 5%(31만 명)만이 이 제도의 수혜 대상자다. 그나마 1, 2등급은 시설에 입소할 수 있지만 3등급은 특정 시간대에 요양보호사를 집으로 불러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요양보호사가 없는 시간에는 엄마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대상을 4, 5등급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은 예산의 벽에 막혀 3년째 표류 중이다.

병상에 있는 시부모나 친정부모뿐 아니라 나이든 남편을 돌보는 것도 부인의 몫이다. 2008년 노인실태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노인의 84%가 배우자에게 간병을 받았다. 그러나 남편에게 간병을 받은 여성 노인은 29%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 여성 노인은 주로 며느리에게 간병을 받았다. 결국 중년 이후의 여성에게 돌봄은 ‘숙명’이 돼 버렸다.

○ 이젠 손주까지 키우라고?

자식들 다 키워놓으면 좀 편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제 좀 쉬고 싶지만 늙은 몸으로 다시 양육 전선에 나서야 한다. 이번에는 자식들의 자식이다. 직장에 정년이 있다지만 여성의 돌봄에는 정년이 없는 셈이다.

60대 정모 씨의 집은 작은 ‘어린이집’이다. 7년 전 첫 손녀를 돌봤다. 현재는 큰딸의 두 아이와 둘째딸의 아이를 ‘키운다’. 가끔 사정이 있다며 막내아들네가 아이까지 맡길 때면 좁은 집이 아이들로 가득 찬다.

남편이 많이 도와준다지만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는 뒤치다꺼리는 정 씨의 몫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정성껏 봐줬는데도 자식의 눈치를 봐야 한다. 자식들이 사례금으로 주는 용돈은 다 합쳐 150만 원 정도다.

“가끔씩 서러워 눈물이 찔끔 날 때가 있어요. 할머니가 손주 돌보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자식들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맞벌이로 힘들어하는 딸이 측은해 시작한 건데, 이젠 그만하고 싶어요.”

2009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조부모가 만 한 살 미만의 손주를 양육하는 가정은 26.4%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비율보다 높았다. 설문자의 절반 이상은 부모 다음으로 가장 바람직한 양육자로 ‘조부모’를 꼽았다. 최인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이 돌봄 노동은 주로 할머니에게 집중된다”며 “부모, 배우자 수발과 손주 육아가 겹쳐 노동이 가중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고모 씨(64)가 그런 사례다. 맞벌이하는 딸의 다섯 살 손자를 돌봐왔는데, 2년 전부터는 따로 살던 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했다. 시아버지가 치매를 앓으면서 요양원에 모시고 나니 아흔을 바라보는 시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순이 넘어 시집살이를 시작하니 우울증이 생기기도 했다.

“손주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이 나이까지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지 울컥할 때가 있죠.”

○ 탈출구 없는 현실, 암울한 미래

돌봄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녀의 대학 등록금이며 결혼자금도 고스란히 부모 책임이다.

결혼 후 3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아온 장모 씨(57)는 지난해부터 아기 돌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딸을 시집 보내고, 30대 아들을 대학원에 보내려니 어쩔 수 없다. 한 달 수입이 100만 원 남짓하지만 그거라도 어디냐 싶었다. 돈이 없으니 보금자리도 팔아야 할 지경이다. 장 씨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중형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의 소형 아파트로 이사할 생각이다.

40, 50대 엄마들이 번듯한 직장에 재취업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주재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40, 50대 여성의 취업률은 10년 전보다 크게 늘었지만 주로 비정규직이었고, 서비스업과 단순노무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이 무렵은 남성이 직장을 가장 많이 관두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엄마가 행복한 사회 자문단인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구에서는 전업주부의 역할을 인정해 연금크레디트나 기초연금을 준다”며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런 역할을 인정하지 않아 보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육시설을 늘리는 것처럼 직접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노후를 포함해 생애 전반에 걸친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석 교수는 “현 사회 시스템에서 여성이 느끼는 불만과 불안이 넓게는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직업교육 받은 후 재취업 ‘새일센터’ 이용해 보세요 ▼


노후 준비도 하고,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중년 엄마가 많다. 그러나 오랜 시간 육아와 가사에만 몰두했던 여성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다. 구직정보를 얻는 것부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까지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럴 때 정부가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가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직업교육과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이하 새일센터)가 그것.

올해 현재 서울 19곳, 경기 11곳 등 전국적으로 90곳의 새일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취업상담에서부터 취업 후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성인력개발센터나 여성회관에 주로 위치해 있다.

센터별로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방과후아동지도사 진로컨설턴트, 실버케어, 병원코디네이터, 아동급식전문가 등 사회서비스 분야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직업교육 외에 직업의식교육과 이미지메이킹, 면접교육 등도 받을 수 있다.

구직 여성이 면접에 어려움을 느낄 땐 취업설계사가 면접에 동행하기도 한다. 직장 적응이 어려운 여성을 대상으로 업체에서 3∼6개월 인턴으로 일하며 직무를 익힐 수 있는 ‘새일여성인턴제’도 운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새일센터가 문을 연 2009년 6만8000명, 지난해 10만2000명 등 2년간 약 17만 명의 여성이 센터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정부는 올해 재취업자 목표를 12만 명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새일센터가 제공하는 교육과 정보의 폭이 좁아 다양한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경력단절 여성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한 뒤 재취업을 시킨다는 취지는 바람직하다”면서도 “돌봄서비스 등 전통적인 여성 역할과 관련된 분야 또는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업종이 대부분이라 장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험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20여 년간 전업주부였다가 최근 새일센터를 통해 초등학교 단체급식 조리원으로 취업한 강모 씨(47)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는데 직업교육을 받고 수월하게 취업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팀원 정효진(산업부) 구가인(경제부) 신나리(국제부) 이새샘(사회부)
우경임 한우신 남윤서 최예나(교육복지부) 곽민영(문화부)

:: 엄마가 행복한 사회 자문단 ::

강지원 변호사
김미경 더블유 인사이츠 대표
김행미 KB국민은행 강동지역 본부장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이복실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
전재희 국회의원·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주원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정이현 소설가
조복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최성남 글로벌어린이재단 뉴욕 회장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 이런 엄마를 찾습니다 ::

육아와 교육, 경제적 문제 등으로 출산을 꺼리는 엄마, 그래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이 더 크다는 엄마…. 여러분의 사연이 담긴 제보를 받습니다. 시리즈에 대한 의견도 환영합니다. happymom@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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