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행복한 사회]<4>아이 맡길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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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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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번호 603번!… 어린이집에 맡기자니 자리는 없고
속타는 워킹맘들… 육아도우미 쓰자니 믿음이 안가고

《 반가운 소식. 최근 10년 새 한국의 어린이집(보육시설)은 갑절로 늘었다. 매년 2000개가 넘는 어린이집이 새로 생겨난다. 이제 엄마들이 아이를 맡기고 맘 편히 일할 여건이 만들어진 것일까. 엄마들의 반응은 썰렁하다. 그들은 말한다.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엄마들은 여전히 힘겹고, 아이 맡길 곳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소중한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속내가 편치 않은데 그나마 맡길 곳도 없다. 그런 엄마들에게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자는 정부의 구호는 속 빈 깡통이 내는 소리일 뿐이다. 》
○ 어린이집, 모두 초만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6월 현재 전국의 국·공립어린이집은 2070곳이다. 2000년 1295곳에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그러나 대기자는 16만8153명으로 이용자(15만5132명)보다 많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순번이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의 이용료는 소득 상위 30%인 가정의 경우 월 22만 원(만 4세 기준) 정도다. 하위 70%는 특별활동비만 낸다. 월 40만∼50만 원을 받는 민간어린이집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감독을 받기 때문에 신뢰도 간다. 이 때문에 엄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보육시설이다. 문제는 입소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데 있다.

두 달 전 아들을 낳은 송모 씨(29)는 육아휴직 중이다. 일단 내년 6월까지는 말미를 얻은 셈이지만 벌써부터 그 후가 걱정이다. 송 씨는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시립어린이집 만 1세반에 서둘러 예약을 했다. 대기표에는 603번이라고 찍혀 있었다. 정원은 고작 12명인데….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도 아이를 봐 줄 여력이 없어요. 직장어린이집도 없어요. 이제 전 누구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죠? 저만 이런 걱정을 하는 걸까요?”

29개월 된 아들을 둔 정모 씨(30)는 대기업에 다닌다. 이 덕분에 최고급 직장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혜택’을 얻었다. 새 건물에, 연령대별로 준비된 다양한 프로그램들…. 정 씨는 만 1세 반에 등록하려고 서둘렀다. 정원 60명에 대기번호는 9번. 금방 순번이 돌아오려니 했는데 착각이었다. 아이를 넣으려는 엄마들의 경쟁은 치열했고 정 씨는 11개월이 지나서야 아이를 입소시킬 수 있었다.

그나마 정 씨는 사정이 아주 좋은 편. 아직도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기업이 많다. 현재 영육아보육법에 의하면 상시근로자가 500인 이상이거나 여성근로자가 300인 이상이면 직장어린이집을 둬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런 기업 576곳 가운데 236곳(41%)이 어린이집을 두지도, 따로 지원을 하지도 않았다. 대기업이 이럴 정도니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엄마 퇴근 전에 문 닫는 어린이집

이도저도 안 되면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 눈치가 보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은가. 사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대부분의 워킹맘은 비싼 돈을 들여 민간어린이집을 이용한다. 현재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이 중 88%가 민간어린이집(가정어린이집 법인어린이집 포함)을 이용한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이모 씨(30)는 한 달 전까지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겼다. 친정어머니가 고향으로 내려가자 이 씨도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다. 이 씨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갑자기 바빠진다.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부랴부랴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업무를 빨리 끝낸 사람이 어린이집으로 달려간다. 오후 6시 정시퇴근을 해도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오후 7시. 시선은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 때문에 퇴근하지 못한 어린이집 교사에게 먼저 간다. 보육료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괜히 눈치가 보인다.

“혹시나 내 아이를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고개를 조아리게 됩니다. 지은 죄도 없는데…. 아이에게도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에 다시 미안해집니다. 정말이지 아이 키우는 게 너무 어려워요.”

영유아보육법이 규정하는 어린이집의 법정 보육시간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총 12시간이다. 하지만 오후 4시가 넘으면 아이들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때부터 남아있는 아이들은 그저 천장만 바라본다. 퇴근이 늦은 부모의 경우 홀로 남아 있는 아이와 교사를 만나야 한다.

많은 워킹맘이 어린이집 시간대를 탄력적으로 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 실제 육아정책연구소의 ‘2009 보육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8%가 특정시간대에 아이를 맡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야간 보육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34.9%에 이르렀다. 일하는 엄마가 원하는 보육이 어떤 형태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 힘들어지는 육아환경, 국가는 뒷짐만

최근에는 매달 120만 원 내외의 돈을 주고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육아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까지 생겨날 정도다. 4개월 된 둘째 아이가 있는 장모 씨(38)도 3개월 전 전문업체를 통해 50대 아주머니를 고용했다.

전문 육아도우미라는데 마뜩잖았다. 아이를 길러본 사람이 맞나 싶었다. 아이를 눕힌 채 젖병을 물렸고 목을 못 가누는 아이를 막무가내로 업었다. 석 달 만에 관두게 했다. 다시 도우미를 구하려 했지만 나이 많은 친정어머니가 있고 남자아이가 둘이라는 설명에 모두 손사래를 쳤다.

도우미가 자주 바뀌면 아이 정서에 좋지 않다. 더 좋은 도우미를 구한다는 보장도 없다. 경기 화성시 동탄에 사는 고모 씨(31)는 육아도우미를 따라 이사 가기도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게 아니고 육아도우미 따라 살 집을 옮기는 시대다.

“도우미로 인한 피해 사례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요. 우리 아주머니는 안 그럴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죠. 혹시라도 내 아이에게 화풀이를 할까 봐 불만을 표현할 수도 없어요.”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보육시설이 늘었다지만 보육여건은 더 안 좋아졌다”며 “최선의 방법은 정부가 밤낮으로 운영을 책임지는 어린이집을 거점별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인건비를 보조한다며 찔끔 생색을 내는 게 아니라 워킹맘의 마음을 읽은 육아정책을 내라는 뜻이다. 결국 문제를 풀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는 셈이다.

▼ “갑작스레 야근 생기면 아이돌보미 이용하세요” ▼

“출근 전 한 시간, 퇴근 후 한 시간만 맡길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의 워킹맘은 같은 고민을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해도 등원은 출근시간보다 늦고 하원은 퇴근시간보다 이르다. 이 때문에 월급을 주면서까지 숙식을 같이하는 도우미를 쓸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야근이라도 생기면 속수무책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방학하면 야속하다.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 사업은 이렇게 하루 3∼4시간씩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메워준다. 만 12세 이하 아동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대상. 돌보미가 집으로 찾아가 아이를 돌봐준다. 2007년 시작돼 올해 1만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

부부가 함께 학원강사로 일하는 고모 씨(37·여·대전 대덕구). 강의가 저녁부터 시작돼 밤늦게 끝난다. 7세 된 아이는 집에 혼자 있을 수밖에 없다. 밤에 아이 혼자 두는 일이 꺼림칙해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다 올 초부터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강의가 있는 날에만 돌보미가 와 아이를 봐준다. 고 씨는 “일주일에 세 번 서비스를 받는데 일하기가 수월해졌다. 아이 걱정을 더니 강의할 때도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업 주부도 때로 아이를 혼자 돌보기 어려울 수 있다. 가령 병원에 가거나 급한 볼일이 생겼을 경우인데, 이때도 아이돌보미는 유용하다.

김모 씨(38·여·부산 사하구)는 10세, 6세, 2세 된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위로 두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막내는 직접 돌본다. 몸이라도 아프면 어린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가 없어 진료를 미루곤 했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아이돌보미가 온다. 이때 병원에 다녀오거나 지친 심신을 달랜다.

‘시간제’와 ‘종일제’ 두 종류가 있다. 시간제 서비스는 맞벌이나 다자녀 부모일 경우 하루 4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가기 힘들 때, 갑작스러운 야근이나 출장이 생겼을 때 신청하면 된다. 시간당 5000원이지만 소득에 따라 본인부담금은 1000∼5000원으로 다르다.

반면 종일제는 12개월 미만 영아를 뒀을 때만 이용할 수 있다. 1일 10시간까지 가능하고, 월 100만 원이다. 역시 소득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다르다. 전화(1577-2514)나 홈페이지(www.idolbom.or.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 ‘직장어린이집 미설치기업 명단(2010년12월 기준): 민주당 이낙연 의원 제공’


::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팀원 정효진(산업부) 구가인(경제부) 신나리(국제부) 이새샘(사회부)
우경임 한우신 남윤서 최예나(교육복지부) 곽민영(문화부)

:: 엄마가 행복한 사회 자문단 (가나다순) ::

강지원 변호사
김미경 더블유 인사이츠 대표
김행미 KB국민은행 강동지역 본부장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이복실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
전재희 국회의원·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주원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정이현 소설가
조복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최성남 글로벌어린이재단 뉴욕 회장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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