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출근해요/2부·끝]<6>대학 프로그램 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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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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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서 개발한 ‘주제탐구’ 도입… 아이 스스로 계획 세워 공부

국민체육진흥공단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친구들의 얼굴’이란 주제에 따라 얼굴을 만들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스스로 주제를 세워 탐구한 뒤 그 주제에 맞게 활동을 하는 ‘주제탐구표현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국민체육진흥공단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친구들의 얼굴’이란 주제에 따라 얼굴을 만들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스스로 주제를 세워 탐구한 뒤 그 주제에 맞게 활동을 하는 ‘주제탐구표현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초등학교 교사인 이지연 씨(서울 강동구 천호동·33)는 5세 된 아들 여준의 유치원을 찾는 데 고민을 많이 했다. 시설도 좋고 선생님도 훌륭했지만 선행학습 위주로 아이를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다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직장보육시설 이야기를 들었다. 저렴한 가격과 친환경 시설도 마음에 들었지만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아동학부가 이 어린이집을 위탁 받아 운영하는 점이 가장 끌렸다. 여느 어린이집처럼 한글과 산수, 영어의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고 자율적인 태도와 창의적인 사고를 배우도록 하는 ‘주제탐구표현활동’은 이 씨가 찾던 교육이었다. 여준은 이 어린이집에 다닌 뒤로 스스로 계획하고 활동하는 일이 많아졌고 시키지 않아도 제 앞가림을 척척 해내는 아이가 됐다.》
소비자아동학부에 위탁 운영…선생님 2명은 대학원생
산수-영어 선행학습 않고 다양한 놀이로 세상 탐구
자립심 키우고 창의력은 쑥


○ 대학 프로그램과 찰떡궁합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수영장 2층 국민체육진흥공단 어린이집은 2003년부터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가 위탁 받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소비자아동학부가 위탁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서울대, 서울고등법원, 하이닉스반도체 등 모두 직장보육시설이다.

‘주제탐구표현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순형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직장보육시설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데 뛰어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직장보육시설은 회사와 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철학이 담긴 교육을 하기 편하다”며 “특히 교사들도 맘 편하게 근무하고 아이들 교육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부모들이 같은 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지속적인 소통망이 있어 다양하고 폭넓은 교류가 가능하다”며 “거기서 어린이집에 대한 의견과 비판을 듣고 미흡한 점을 고칠 수 있어 그 혜택이 아이들에게 빨리 돌아간다”고 말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어린이집은 원장선생님과 5명의 보육선생님 가운데 2명이 소비자아동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했거나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다. 원장은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수년의 현장 경력을 가져야 한다. 학위 과정 중에 있는 학생은 교사로 일할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직접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실습하고 현장 경험을 축적할 기회라 지원자가 많다.

현재 유치원에는 직원 자녀 48명과 지역주민 자녀 19명이 다니고 있다. ‘달님반(만 2세 이하)’ ‘햇님반(만 3세)’ ‘별님반(만 4세)’ ‘은하수반(만 5세)’에 각각 10∼20명이다. 보육선생님은 가장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달님반에 2명, 나머지 반에는 1명씩이고, 수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공단은 2008년 어린이집을 옮길 때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당시 보육실 4곳, 시청각실 1곳, 특별활동실 1곳, 실내외 놀이터 각각 2곳의 배치와 디자인을 모두 소비자아동학부 연구진과 상의해 결정했다.

2006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년째 공단 어린이집을 맡고 있는 정현심 원장(33·여)은 “교사실을 중간에 두고 양옆으로 보육실을 배치한 것과 사무실 조명, 환기구, 폐쇄회로(CC)TV의 위치, 화장실 변기의 크기까지 모두 연구진의 조언을 바탕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유해물질을 없애고 친환경적으로 짓기 위해 본드 등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연구진의 아이디어였다.

○ 놀이를 통해 세상을 탐구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다양한 위탁업체의 지원서를 평가한 뒤 최종적으로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와 손을 잡은 것은 서울대가 제시한 주제탐구표현활동 때문이었다. 주제탐구표현활동이란 선생님과 학생이 학습할 주제를 함께 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교육법이다. 소비자아동학부가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미국의 ‘프로젝트 접근법’을 접목해 한국 실정에 맞는 교육법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이 활동의 핵심은 아이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공부 방법과 과정 역시 주도적으로 계획하는 것이다. 보육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물어 하나의 주제를 도출해낸다. 이 주제와 관련한 단어와 활동을 이끌어내고 그에 맞춰 학습계획을 짠다.

“‘토끼’ 하면 뭐가 생각나느냐”고 물어 ‘귀’ ‘팔’ ‘다리’라는 답이 나오면 이들을 ‘토끼의 몸’이라는 하나의 소주제로 묶는다. ‘토끼와 거북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대답이 나오면 ‘토끼이야기’라는 소주제로 묶어 연극을 짠다. 아이들은 자신이 정한 주제로 작품이나 연극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선보인다.

은하수반 아이들의 주제탐구교육수업을 들여다봤다. 새 학기 첫 주제는 ‘은하수반 친구들’. 소주제는 ‘은하수반 교실’ ‘친구들 이름’ ‘친구들과 추억’ ‘친구들이 잘하는 것’ ‘친구들 표정’이었다. 교실 벽엔 이런 주제들이 방사형 도표로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은 재활용품으로 친구의 얼굴을 만들었다. 일반 유치원 미술수업은 보육선생님이 재료와 완성 틀을 제시하고 아이들은 그에 맞춰 비슷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데 이곳에서는 선생님들이 재료를 펼쳐놓을 뿐이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재료와 도구를 집어 본인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정 원장은 “아이들이 처음 오면 이런 수업에 적응 못해 ‘못하겠다’고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는데 금세 극복한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구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이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직장보육시설 선택 가장 큰 이유는 ‘신뢰’

■ 육아정책센터 1170명 설문
“계속 이용하겠다” 63%



직장보육시설을 직접 이용하는 부모들이 꼽는 직장보육시설의 장점은 무엇일까. 육아정책개발센터의 ‘일하는 여성 보육지원 강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보육시설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뢰’(52.1%)였다. ‘등하원 편리성’(26.7%)이 뒤를 이었고 ‘저렴한 보육비’와 ‘시설·환경’이 각각 5%였다. 이는 직장보육시설 이용 아동 부모 11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항목별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도 교사의 질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우수한 보육교사’가 40%였고 다음은 ‘시간적 편리함’ 26.2%, ‘낮은 교사 대 아동비율’ 12.9% 순이었다.

또 점수로 환산한 만족도에서도 교사의 질을 4.3점(5점 만점)으로 가장 높게 평가했다. 직장 근무시간에 맞춰 보육시간을 늘린 것이 4.1점, 프로그램과 보육료는 각각 4점이었다. 이는 지역보육시설이나 국공립시설과 비교할 때 평균 0.2점 높았다.

실제 직장보육시설에 5세 자녀를 보내고 있는 정현주 씨(37·경기 성남시)는 “보육교사의 자질이 우수한 데다 부모가 언제라도 찾아가 볼 수 있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직장보육시설을 계속 이용하겠다는 응답자도 63.4%나 됐다. 다른 보육시설로 옮기겠다는 비율은 5%도 되지 않았다. 다만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에 보내고 싶다는 응답은 29.9%였다.

직장보육시설 이용 이후 변화를 묻는 질문에 ‘자녀의 안전에 안도감이 든다’(85.3%), ‘자녀와의 관계에 긍정적이다’(84%), ‘업무 몰입도가 높아졌다’(75.8%)를 꼽았다. 이는 ‘아이와 함께 출근해요’ 시리즈 취재를 위해 만난 부모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좋다”고 입을 모은 것과 일치하는 결과다. 하지만 설문자의 55.8%는 직장보육시설을 이용할 때 어려운 점이 있다고 응답했다.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기가 어렵다’(13.5%) ‘아이의 귀가시간에 맞추려면 상사의 눈치가 보인다’(12.2%) 등이었다.

직장보육시설 컨설팅 무료로 해드립니다

동아일보는 직장보육시설 설치를 희망하는 기업을 상대로 보육컨설팅을 무료로 해드립니다. 보육시설 비품을 지원해 줄 기업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컨설팅 문의 02-555-5062(모아맘) 02-581-8554(푸른보육경영), 참여 및 후원 문의 ilove@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산업부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사회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교육복지부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오피니언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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