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일어난다]④ 멀어지는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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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일 11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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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었던 A 씨는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안지 1년 반 만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대형 건설회사에 다니던 B 씨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3년이 채 안 된다. 그나마 누나가 도와줬기에 오래 버텼다(3회 기사 참조).

이들에게 에이즈는 배고픔이고 막막함이다. 이젠 더 이상 죽을 병이 아닌데도, 살아갈 날이 창창한데도, 제대로 살아갈 방도가 안 보인다.

국립의료원의 신형식 감염센터장은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건 일반인이나 에이즈 환자가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는 장수가 두렵다. 에이즈로 인해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치료받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연도별 예방 사업 지원 예산 자료=질병관리본부
연도별 예방 사업 지원 예산 자료=질병관리본부


C 씨(37)는 에이즈로 인해 일찌감치 치매증세와 행동조절 장애가 나타났다. 그는 서울 대형병원의 정신과를 찾았지만 입원을 거절당했다. 결국 국립병원에 잠시 입원했다가 떠밀리다시피 퇴원했다. 치매 병동에선 에이즈 환자를 기피하고, 에이즈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감염내과 병동에선 치매환자를 돌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D 씨(37)도 에이즈 발병 뒤 건망증이 점차 심해졌다. 자신의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고서도 며칠 뒤 자신이 피해자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얼마 안 가 그의 뇌는 바이러스가 모두 갉아먹었다.
서울아산병원 우준희 안준호 교수팀이 올해 9월 발표한 논문을 보면, 에이즈 환자가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우울증은 일반인의 7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13배, 약물사용 장애는 2배가량 높다.

문제는 정신질환 등 에이즈로 인해 다양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지만 에이즈와 합병증을 동시에 치료해줄 기관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한미 연도별 에이즈 사업 예산 자료=질병관리본부, Kaiser Family Foundation 'HIV/AIDS Policy Fact Sheet'. 미국의 에이즈 사업 예산 중 국제 사업 지원 예산은 제외
한미 연도별 에이즈 사업 예산 자료=질병관리본부, Kaiser Family Foundation 'HIV/AIDS Policy Fact Sheet'. 미국의 에이즈 사업 예산 중 국제 사업 지원 예산은 제외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에이즈 감염인의 수명이 늘면서 노인성 질환으로 숨지는 비율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감염인의 연령 증가에 대비해 장기요양병상을 확보할 계획이지만 한정된 예산 때문에 사업진행이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에이즈 치료약을 장기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는 것도 큰 문제다. 30여 종의 에이즈 치료약 가운데 국내에 들어온 것은 15종. 이 중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을 찾으려면 '약제 내성검사'를 해야 하지만 이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은 국내에 몇 곳 없다. 에이즈 환자의 몸 상태에 맞는 약을 추천해주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에이즈 관련 예산은 매년 엇비슷하다. 2006년 81억 원에서 2007년 78억 원, 지난해 71억 원. 올해 77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산의 절반이 치료 및 검사비 지원에 몰리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에이즈 예방이나 홍보사업 관련 예산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과 AIDS 환자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 비교 자료=박휘준, 홍진표 외,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환자의 정신질환 유병률과 심리사회적 적응', 2009.
일반인과 AIDS 환자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 비교 자료=박휘준, 홍진표 외,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환자의 정신질환 유병률과 심리사회적 적응', 2009.

반면 미국의 에이즈 관련 예산은 2006년 160억 달러, 2007년 168억 달러, 지난해 175억 달러, 올해 185억 달러로 꾸준히 늘고 있다. 에이즈 예방, 홍보, 교육 등에 점점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김준명 감염내과장은 "선진국은 에이즈 예방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반면, 우리는 치료 관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며 "에이즈 예방과 홍보를 등한시했다가 다시 에이즈 환자가 늘어난 미국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강경석 수습기자 coolup@donga.com
강은지 수습기자 kej09@donga.com
박승헌 수습기자 hparks@donga.com
박희창 수습기자 ramblas@donga.com
장관석 수습기자 jks@donga.com
차현주 수습기자 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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