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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다문화의 진화]<1>능동적 사회참여로 당당히 서다

입력 2013-10-21 03:00업데이트 2013-10-22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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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이등국민?… 사회에 도움주는 한국 국민입니다” 러시아 출신 쁘리마코바 따띠아나 씨(34·여)는 매주 일요일이면 러시아인 대여섯 명과 함께 서울 중구 명동에 모인다. 한국인 10여 명에게 무료로 러시아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는 2011년에 ‘러시안커뮤니티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러시아 문화와 언어에 관심 있는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서로 돕고 소통한다.

따띠아나 씨는 대학 시절 한국어를 전공한 뒤 한국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2005년엔 한국 남자와 결혼했고 대기업에 다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를 만날 때면 편견을 내비쳤다. 한국에 시집 온 외국 여성은 으레 가난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는 ‘불쌍한 여성’의 이미지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인 친구를 모아 ‘성공적인 여성클럽’을 만들었다. 매달 모여 사업 경험을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단체는 점점 커져 러시안커뮤니티협회로 발전했다. 회원수는 한국인을 포함해 400여 명으로 불었다.

따띠아나 씨는 “한국인이 외국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 우리부터 나서서 대화하고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며 “그래야 편견도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받은 만큼 돌려준다

자발적으로 단체를 만들어 한국 사회에 기여하려는 이민자가 점점 많아진다. 과거에는 정부나 기업, 시민단체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도움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제 이민자는 더이상 피동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로 참여하려고 한다.

중국 출신 결혼이민자 변애련 씨(34·여)는 다우회(多友會) 회장이다. 다우회에는 8개국 출신 이민자와 그 가족 500여 명이 가입했다. 이들은 2007년부터 매년 바자회와 일일찻집을 열어 수익금을 기부한다. 올해도 수익금으로 한부모가정 3곳에 장학금 100만 원씩을 지원했다. 그는 2007년 서울 강서구청에서 이중언어강사 교육을 무료로 받았다. 이때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지원만 받지 말고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우회를 만들었다. 초창기에 회원들은 남편으로부터 “한국말도 잘 못하면서 왜 나가서 돌아다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변 씨의 남편은 달랐다. 한 달간 일을 쉬면서까지 바자회 일을 도왔다. 어려운 주민의 가정을 방문할 때는 함께 나섰다. 회원들의 남편이 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열었다. 이들은 활동을 확대해 매달 특수학교에 가서 김밥을 만드는 봉사활동을 한다.

파키스탄 출신 이레샤 페레라 씨(38·여)가 2010년 만든 이주여성 자조단체인 ‘톡투미’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회원들은 3, 4개국 음식이 담긴 도시락, 헝겊을 이용한 인형을 함께 만든다. 판매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거나 이주여성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사용한다.

○ 이민자 가족도 나선다


베트남 출신 아내를 둔 박창덕 씨(38)는 올해 4월 설립된 경기다문화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협동조합은 2010년 경기 부천시에 사는 다문화가정 남편의 모임인 ‘부천다모’라는 자조모임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서로 멘티와 멘토를 지정해 상담을 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실제로 이민자가 필요로 하는 점과는 괴리감이 있다고 박 씨는 생각했다. 이민자가 커피숍이나 쇼핑몰을 차릴 수 있도록 협동조합이 도우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지는 그냥 돈을 써버리는 게 아니라 100을 투자했으면 30이라도 생산되게 하는 재창조가 돼야 하잖아요. 이민자에게 돈만 써서 되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법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남성 이민자의 아내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파키스탄 출신 남편을 둔 정혜실 씨(46)는 ‘국경을 넘는 아시아 여성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터(TAW) 네트워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은 정책을 제안하거나 파키스탄 공용어 등 외국어를 배운다. 정 씨는 “자조모임이 고민을 나누고 축제에만 참여하는 거라면 발전이 없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정책을 바꾸는 일에 더 활발하게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자와 관련된 제도나 정책은 많이 좋아졌지만 사회적인 편견은 더 심해졌다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어 다문화가정 아이가 뭘 잘하면 ‘다문화가정인데도 잘하네’라고 생각하고 이들이 잘못하면 ‘다문화가정이니까 못하네’라고 여기는 식이다.

이들에겐 꿈이 있다. 한국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불쌍한 이등시민’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일.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인 왕지연 씨(38·중국 출신)는 “이민자 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려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다문화사회가 조화롭게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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